▲해상 케이블카에서 내려다본 돌산도 풍경. 도로가 관통하는 곳 주변의 산은 어김없이 헐리고 있다. 그곳엔 머지않아 호텔과 카페가 들어서게 될 것이다.
서부원
여느 지역 케이블카와는 달리 이곳은 밤이 대목이다. 평일은 밤 9시 30분까지, 주말에는 밤 10시 30분까지 운행된다. 기실 밤에 보이는 풍경이란 형형색색 전구가 뿜어내는 불빛이거나, 그 빛이 일렁이는 밤바다에 반사되어 보이는 것일 뿐이다. 기실 밤 풍경의 지배자는 전기다.
여수의 밤은 '휘황찬란'하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풍광을 묘사하는 이 네 글자는 천연의 자연환경에는 사용되지 않는 표현이다. 그렇다. 여수의 땅과 바다는 콘크리트와 전기로 대표되는 인공으로 뒤덮였고, 그것을 담기 위한 관광객들의 카메라 셔터 소리로 도시 전체가 포위됐다.
'여수 밤바다'. 모든 국민이 한 번쯤은 흥얼거려봤을 노래다. 곡을 쓴 가수 장범준은 명예시민이라는 호칭만으로 태부족한, 여수를 빛낸 가장 위대한 인물이 됐다. 적어도 지금 길 가는 아무나 붙잡고 여수 하면 떠오르는 인물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대번 그의 이름을 댈 것이다.
곡의 제목과 노랫말을 상호로 사용하는 가게가 부지기수다. 여수에는 온통 '밤바다' 간판뿐이라며 혀를 내두를 정도다. 도심 한복판에 자리한 '이순신 광장'을 요즘 세대의 감성에 맞게 '버스커버스커 광장'으로 이름을 바꾸면 관광객들이 두 배로 늘 거라는 우스갯소리마저 있다.
급기야 여수 밤바다는 젊은 세대끼리 정서를 교감하는 통로이자 여행자의 로망이 됐다. 한때 그들의 인사말은 "너 여수 밤바다 가봤어?"였다. 지금도 밤이 찾아오면 여수의 어느 카페에 가든 여수 밤바다를 보면서 고장 난 레코드판 돌아가듯 여수 밤바다를 듣게 된다.
잘 알려진 이야기지만, 그가 처음 곡을 착상한 곳은 불빛보다 별빛이 더 밝던 만성리 해수욕장이다. 그곳에선 환한 보름달의 달빛조차 거뭇하게 내려앉고, 하늘과 땅, 바다가 어둠 속에 한 몸이 된다. 백사장이 아닌, 검은 모래의 '흑사장'으로 유명한 한때 여수의 상징이었다.
그에게 누군가와 함께 걷고 싶게 한 '조명'이 지금 검은 모래조차 하얗게 보이도록 만드는 휘황찬란한 불빛은 아니었으리라. 그 어지러운 불빛 아래라면 '바람에 담긴 알 수 없는 향기'를 느낄 겨를이 없었을 테니 말이다. 지금이라면 그곳에서 악상을 떠올리긴 힘들 것이다.
10여 년 전 노래의 멜로디처럼 서정적이던 밤바다는 이제 어디서도 만날 수 없다. 어쩌면 그 서정적인 풍경이 지금의 휘황찬란한 여수 밤바다를 만든 것인지도 모른다. 10여 년 전 그때로 돌아가기에는 너무 멀리 와버렸다. 화려한 불빛은 바람 소리와 파도 소리마저 잠재우고 있다.
귀로 듣는 '여수 밤바다'와 눈으로 보는 '여수 밤바다'는 180도 다른 느낌이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해마다 엄청난 관광객들이 여수를 찾고 있다. 통계에 따르면, 코로나가 두 해째 기승을 부렸던 작년 여수를 찾은 관광객 수가 977만 명으로 집계됐다. 숫자로 치면 제주도 다음이다.
여수는 람사르 습지와 제1호 국가 정원으로 유명한 순천과 함께 특히 젊은이들 사이에서 최고의 '핫플'로 손꼽히고 있다. '섬 관광은 제주고, 뭍 관광은 여수와 순천'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여수와 순천이 자동차로 30분 거리의 동일 생활권이어서 관광객들에겐 '일석이조'인 셈이다.
유명세는 갓김치로 잘 알려진 한적한 어촌마을 돌산까지 상전벽해로 만들었다. 기존의 돌산대교에다 거북선대교까지 개통되면서 섬 고유의 정체성을 잃었고, 숲과 논밭은 빠르게 콘크리트로 덮여가고 있다. 바다 건너 여수와 마찬가지로 세워지는 건 죄다 호텔과 카페다.
인구 28만여 명의 작은 도시가 해마다 30배가 넘는 관광객 수요를 감당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전국 대부분의 관광지가 겪는 공통적인 문제일 테지만, 관광객의 폭증은 주민들의 정주 여건을 나날이 악화시키고 있다. 이는 이주로 인한 지속적인 도시 인구의 감소로 이어졌다.
도시는 하루가 다르게 커지고 건물은 하늘을 찌를 듯 높아만 가는데, 정작 주민은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이젠 '젠트리피케이션'의 문제점을 꼬집고 대책을 요구하는 목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뜨내기손님들이 주인 행세하는 관광 도시의 미래가 영원한 핑크빛은 아닐 듯하다.
여수의 다사다난했던 현대사는 어디에
고통받는 건 주민만이 아니다. 여수의 다사다난했던 현대사도 관광객의 등쌀에 깎이고 묻히는 신세다. 지난해 여순사건 특별법의 제정으로 관련 유적지와 안내판 등이 정비될 법도 하건만, 달라진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다. '천만 관광지'라는 화려한 명성에 누가 된다고 여기는 걸까.
당시 수많은 민간인을 학살하고 암매장한 곳 바로 앞에서 레일바이크 영업을 하면서도 그 흔한 안내판 하나 세워져 있지 않다. 시내에 도로표지판 수만큼 관광 안내판이 설치돼 있지만, 여순사건과 관련된 건 눈 씻고 봐도 없다. 심지어 유적지의 훼손을 나 몰라라 한 곳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