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탈모 환자가 늘고, 대선 후보가 '탈모 공약'을 내놓으면서 유통업계가 국내 탈모 케어시장 성장세를 예상하고 있다. 사진은 7일 한 대형마트의 두피·탈모 케어존. 2022.1.7
연합뉴스
국민건강보험법은 건강보험 예상수익(보험료 납부분)의 14%에 달하는 금액을 국고를 통해 공단에 지원하도록 하고 있다. 또 국민건강증진법은 (흔히 담배부담금으로 이해되는) 건강진흥기금으로 건강보험 예상수익의 6%에 달하는 금액을 지원하도록 한다.
국민이 내는 보험료 외에도 보험료의 20%에 달하는 금액을 국고를 통해 추가로 지원하는 것은 건보 재정의 안정성을 확보하여 국민 개개인이 적어도 돈이 없어 치료를 받지 못하는 사태는 막겠다는 취지다. 좋은 취지의 법이지만 부족하다. 일단 해외와 비교하면 상당히 적은 액수다. 일본은 예상수익의 28.7%, 프랑스는 63.3%에 달하는 금액을 지원한다. 더 큰 문제는 그 적은 지원마저 제대로 지급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부는 2020년에만 3조 2천억 원, 국고지원을 명시하는 법이 만들어진 2007년부터는 28조 원을 미지급했다. 건강보험이 유지 되기 위한 정부의 노력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국고지원을 더욱 명확하게 지시하기 위한 법개정은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고, 관련부처는 미지급금 지원을 (공공연히) 곤란해하고 있다. 정부지원금이 축소되면 가입자의 보험료 부담이 늘어날 수밖에 없고 보장성 역시 떨어질 수밖에 없다. 급격한 고령화와 만성질환 증가, 더구나 최근의 코로나 팬데믹까지 건강보험 지출이 급증할 것이 명확히 예상되는데도 건강보험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려는 노력이 없는 셈이다. 그런데 이 와중에 탈모 치료에 건강보험 지원을 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소외된 것은 무엇인가
'소외된 질병'은 있다. 말했다시피 등한시되거나 멸시당하는 질병들, 그 고통마저 희화화하는 질병들이 있는 것은 분명하다. 이재명 후보의 탈모 건강보험 지원 정책이 그 같은 소외에 눈길을 주기 위해 등장한 것이라면 한 명의 탈모인으로서 환영할 일이겠다만, 그렇게 보기에 이 정책은 너무 많은 소외를 (어쩌면 일부러) 외면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당장 '간병 비용'을 떠올릴 수 있다. 우리 사회는 대부분의 간병을 가족에게 의탁하고 있다. 긴 병에 효자 없는 법이다. 간병은 그 자체로 대단히 힘든 노동이고 고역이다(간병인을 쓰려면 얼마나 많은 돈이 들어야 하는지를 떠올려 보라). 그래서 간호·간병 통합제도라는 것이 도입됐는데, 이건 또 이대로 간호 인력에게 (가뜩이나 부족한, 터무니없이 부족한!) 간병의 고역까지 떠넘기는 형태로 진행되고 있는 실정이다.
최근 이재명 후보는 뇌출혈로 쓰러진 아버지를 방치한 청년에게 편지를 보내 "가족 한 명이 아프면 가정이 무너지는 간병의 구조를 살피겠다"라고 말했다. 가난해서 누군가 죽어야 하는 구조를 살피는 일이란 무엇일까. 적어도 탈모 치료에 건강보험 재정을 사용하는 일은 아닐 것이다.
이재명 후보뿐 아니라 '국민 개개인의 더 건강한 삶'과 '가난해서 죽지 않는 사회'를 입에 올리는 정치인이라면 가장 먼저 의료의 공공성과 건강보험 재정의 확대를 통한 사회안전망 강화를 말해야 한다. 건강보험 재정 확대에 대한 어떤 비전 제시도 없이(하다못해 표 떨어질까 봐 건강보험 재정을 위해 건강보험료를 더 내자는 말도 못 하고 있지 않은가) 탈모 치료에 건강 보험 재정을 사용하겠다는 것이 어떻게 의료의 공공성을 높일 것인지 알 수 없다.
선거 시기에 '표가 되는' 공약을 내놓는 것이 뭐가 문제냐고 하기에 그 공약 때문에 악화될 것들, 또 잊힐 것들이 너무 많다. 당장 간병비 급여화에 대한 얘기는 일언반구도 없다. 간병의 구조를 살피겠다면서.
심어야 할 것은 그게 아니다
말했다시피 난 탈모 환자다. 아니다, 실은 환자라고 하기엔 그냥 그렇게 생겼다. 남들보다 탈모가 조금 더 일찍 왔을 뿐이다(양가 어르신들의 모발 상태를 떠올려 보자면 도망갈 구석이 없다. 예로부터 씨도둑은 못한다고 했지). 그래도 탈모로 받는 고통이 적은 것은 아니다. 어떻게 해도 휑뎅그렁한 머리털을 보면 마음이 아프다. 놀림받는 것도 싫다.
또 말했다시피 난 고혈압과 당뇨 환자고 심혈관계통 이상으로 꾸준히 검진을 받아야 한다. 그때마다 비급여 검사항목으로 꽤 많은 비용을 부담해야 하고, 가끔 입원이라도 할라치면 수백만 원의 비용이 든다. 둘 중에 어떤 치료가 먼저냐고, 어떤 치료에 비용 지원을 받고 싶냐고 묻는다면 답은 뻔하다.
처음에 말했듯 모든 병에 경중은 없다. 그저 선후가 있을 뿐이다. 모든 병의 치료를 지원하고 모든 국민이 충분한 의료 지원을 받을 수 있다면 참 좋을 것이다. 그러나 이 역시 말했듯 한정적인 건강보험 재원 안에선 불가능한 일이고, 이 목표에 가까워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건강보험 재정을 확대하는 일, 공공의료의 가치를 확인하는 일이다.
그렇다, 심을 것은 머리털이나 이재명이 아니라 공공의료, 그를 위한 건강보험 재정확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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