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지금 우리 학교는] 스틸컷
넷플릭스
악몽은 기괴한 것이니 만큼 <지금 우리 학교는>의 시·공간도 기괴하게 뒤틀려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인상 깊은 부분은 학교 안에 좀비들에게 둘러싸여 고립되어 있는 학생들의 시간과 학교 밖 어른들의 시간의 속도가 전혀 다르게 흐르고 있다는 것이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효산고와 학교의 외부인 계엄사령부와 격리 수용소의 시간이 실제로 다르게 흐르는 것은 아니지만, 보는 이들로 하여금 그렇게 느낄 수밖에 없도록 편집되었다.
12부작으로 장황하게 만들어진 <지금 우리 학교는>은 실은 단 4일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효산고등학교에서 갑자기 좀비가 창궐해 온조와 청산 일행, 하리와 미진 일행 등 학교에 고립된 생존자 학생들이 계엄군의 구조 없이 자력으로 학교를 탈출해 강당을 가로질러 뒷산까지 도착하는 3일, 그리고 효산시를 벗어나기 위해 이동하다 계엄군에게 구조되는 강도 높은 하루의 분투가 지루할 정도로(이 말은 비아냥이 아니다. 긴 고립은 설령 죽음에 직면해 있더라도 필연적으로 지루함을 수반한다) 길게 나열된다.
학교의 상황이 이처럼 느리게 흐르는 반면에 같은 시간 동안 학교 밖에서는 좀비가 창궐한 지 고작 하루 만에 청와대의 결정으로 효산시에 비상계엄이 선포되어 버린다. 그리고 불과 그 하루 동안 계엄사령부는 좀비와 면역이 있는 감염자 은지를 생포해 실험∙관찰하는 한편, 바이러스를 만든 과학교사 이병찬의 노트북을 입수해 밤새 자료를 분석해 국가정보원 및 질병관리청과 논의하고는 그다음 날 바이러스의 치료가 불가능하다고 결론 내린 뒤 생존자 구조 없이 좀비 및 감염자가 된 시민들을 폭격으로 폭사시켜 버린다.
그리고 계엄을 지휘한 계엄사령관은 스스로 내린 결정에 죄책감을 느끼고 권총으로 자살해 버린다. 놀랍게도 이 수많은 일이 학교 밖에서는 단 이틀 사이에 벌어진다. 그러니까 <지금 우리 학교는>은 재난에 대한 해결과 오염에 대한 정화, 트라우마로부터의 도피에 대한 조급증에 시달리고 있다. 그리고 스스로는 이것들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다.
<지금 우리 학교는>은 사회 문제들과 역사적 트라우마에 대한 강박으로 거의 질식하기 일보 직전의 드라마이다. <지금 우리 학교는>은 결말에서 가까스로 효산시의 좀비 창궐 사태가 해소되기는 하지만, 결국 드라마 내내 기억 상실에 걸린 듯 또는 그저 기분 나쁜 꿈을 꾸듯 희미한 채로 부유하는 역사의 트라우마들을 직시하지도, 감당하지 못하고 강박 증상이 폭주해 결국 자폭으로 귀결되어 버리는 개연성 없는 악몽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도대체 12부작의 긴 악몽에서 무엇을 보고 또 열광하고 있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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