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파도 올레길에서 바라본 제주도. 송악산과 산방산이 손 뻗으면 닿을 듯 가깝고 저 멀리 한라산이 아스라이 보인다.
서부원
제주의 상징인 봉긋한 오름들은 도로와 건물 등 인공물에 포위되어 자태를 잃었고, 하늘과 수평선이 맞닿은 장쾌한 바다를 만끽할 공간조차 마땅찮다. 길목마다 어김없이 식당과 카페가 주인 행세를 하고 있어서다. 제주의 멋진 풍광을 즐기려면 돈을 내야만 한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건, 관광객을 상대로 한 위락시설들이 산 중턱과 해안가에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지만, 흰 눈을 인 한라산 정상만큼은 가리지 못한다는 점이다. 날씨가 허락된다면 동서남북 어디에서든 그 장엄하고 신비로운 모습을 친견할 수 있다. 하나 남은 '이국의 정취'다.
요즘 제주의 '삼다'는 좀 안타깝다
학창 시절 제주도를 삼다도라 배웠다. 알다시피, 바람과 돌과 여자가 많다는 뜻으로 붙여진 별칭이다. 비유적 표현일 뿐인데 그 세 가지를 적으라는 시험 문제까지 나온 걸로 기억한다. 지금은 교과서 어디에서도 나오지 않지만, 아무튼 그때는 반드시 외워야 할 필수 교양이었다.
삼다도는 제주산 생수 브랜드에만 남은 '사어'다. 혹 지금도 제주도를 삼다도라 부르는 이들이 있다면, 예전처럼 그 셋을 꼽는 경우는 드물 성싶다. 바람은 고층 콘크리트 건물에 막혔고, 돌은 콘크리트에 덮였으며, 여자는 외지 관광객으로 대체되어야 적확할 것이기 때문이다.
제주의 하루하루가 상전벽해라던 토박이분은 삼다도라는 표현은 여전히 유효하다면서 대신 이 세 가지를 들었다. 렌터카와 편의점, 그리고 쓰레기. 길 위의 자동차 두 대 중 한 대는 렌터카이고, 100~200m에 하나꼴로 대기업 브랜드의 편의점이 있으며, 산과 바다에 널브러진 쓰레기는 차라리 '화수분'이라고 말했다.
이태 전 서울에서 제주로 이주해온 한 지인 부부는 시나브로 망가지는 제주도가 안쓰러워 짬이 날 때마다 '플로깅'에 나선다고 했다. 마을 주변과 올레길을 수시로 걸으며 쓰레기를 가방에 담아온다는 것이다. 그들이 제주 2공항 건설을 반대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천혜의 관광지 제주도를 보존하기 위해선 관광객 수를 제한하는 방법밖에 없다는 결론이다. 고작 70만 명이 거주하는 섬에 해마다 1,500만 명에 육박하는 외지인들이 찾아오는 현실에서 환경이 멀쩡할 리 없다는 거다. 그나마 코로나로 중국인 관광객의 발이 묶여 잠시나마 숨 쉴 겨를이 생겼다며 다행스러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