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편향, 불교왜곡 근절과 한국불교 자주권 수호를 위한 전국승려대회’ 개최를 하루 앞둔 2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조계사 일주문에 ‘정청래는 즉각 사퇴하라’ 현수막이 내걸리고, 대웅전 주위로 대형 모니터와 스피커, 의자가 설치되는 등 행사 준비가 한창이다.
권우성
정청래 의원이 10월 5일의 국정감사장에서 문화재 관람료를 '통행세'라 지칭하는 등 이를 반대하는 발언을 하였고, 이에 대해 종단은 그의 사퇴를 주장하며 21일에 승려대회를 열겠다고 한다. 불교계의 주장처럼 그동안 정부가 기독교에 편향적인 태도를 유지해왔고, 정청래 의원의 표현에 다소 문제가 있다고 하더라도 이 빌미로 승려대회를 여는 것은 비법적(非法的)이자 비상식적이다.
불가에서 승려대회는 한 마디로 말하여 최고의 권위를 갖는 공론장이다. 승려대회는 비상사태를 맞이하여 승려들이 한 곳에 모여 논의하는 산중공사이며, 종헌 종법을 뛰어넘는 초법적인 힘과 의미를 갖는다. "승려대회란 ① 모든 승려들이 한 곳에 모여현안을 논의하는 토론의 장으로 … ② 초법적인 구속력을 가지는 것이 특징이(며)…③ 만장일치가 도출될 때까지 무기한 산중공사를 강행하는 것이 전통이다."(김순석, <1994년 대한불교조계종 개혁종단의 성립과 의의>)
우리에겐 신라시대부터 산중공사의 전통이 있으며 이것이 근현대사에서 승려대회로 바뀌어 승려의 공론을 모으고 불교 혁신과 중흥을 꾀하는 장이 되었다. 특히, 86년 해인사, 94년 서울 조계사 승려대회는 불교계는 물론 시민사회의 지지를 받았으며 불교 혁신의 지평을 열었다. 해인사 승려대회는 중세의 호국 어용 불교에서 벗어나 민주화운동에 동참하는 불교, 중세 봉건적 잔재를 탈피하고 근대화한 불교로 거듭나는 기점이 되었다. 94년 승려대회는 정치권과 유착, 종단 운영의 부패, 낡은 행정제도를 쇄신함과 아울러 부패하고 타락한 승려들을 몰아낸 근현대불교사에 한 획을 긋는 사건이었다.
정부의 종교 편향과 차별이 있었다면, 당연히 시정되어야 할 사항이지만 핵심은 정청래 의원의 발언이다. 종교 편향과 차별이 저변의 분노로 자리하긴 했지만, 종단에서 취한 그동안의 과정이나 발언을 보면 이는 승려대회를 열기 위한 명분 쌓기용일 뿐이다. 국회의원이 사찰 관람료를 받지 말라고 한 발언이 종단의 당간을 무너트릴 만큼 비상사태도 아니며, 그 문제가 종헌 종법을 뛰어넘는 초법적인 행동을 필요로 하기는커녕 너무도 사소한 사안이다. 이는 벼룩을 잡자고 초가삼간을 태우는 격이다.
더구나 지금은 코로나 시국이자 동안거 중이다. 코로나 시국에 수많은 스님이 모이게 되면, 그동안 잘 지켜온 덕에 시민사회로부터 박수를 받았던 방역수칙을 어김은 물론 스님들을 범법자로 내몰 수 있다. 동안거 중에 승려대회를 여는 것은 수행을 방해할 뿐만 아니라 승가 분란을 일으킬 수 있다. 오늘에라도 당장 취소함이 여법(如法)한 결정이다.
그럼에도 종단이 이를 강행하여 수천 명의 승려가 모이고 종단이 이를 '전국승려대회'로 명명한다 하더라도 이를 승려대회를 인정할 수 없다. 이것이 승려대회의 개념에 부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위에서 정의한 대로, 승려대회는 모든 승려들이 한 곳에 모여 현안을 논의하여야 하는데 일부만 참석할 것이며, 만장일치가 도출될 때까지 무기한 산중공사를 강행하는 것이 아니라 몇몇 권승들이 제안한 안건을 추인하는 자리가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허정 스님과 필자가 소속된 정의평화불교연대에서 1만 85명의 스님들에게 '뿌리오'를 통해 문자를 보내 구글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601명(64.4%)가 반대의사를, 301명(32.4%)이 찬성의 의견을, 37명(4%)이 기권의사를 표명하였다.(942명 응답, 회신율 9.34%) 설문의 시작 시간은 19일 오후 5시 16분이며 마감시간은 20일 오전 11시였다. 더구나 종정이 반대했기에 더욱 정당성이 없다. 아무리 권승들이 승려대회라고 우기고 그렇게 표제를 단다고 하더라도 21일의 대회는 '권승이 주도한 일부 승려들의 모임'일 뿐이다.
더불어, '세몰이'가 곧 여법이 아니다. "민주주의의 다수결에 익숙한 우리는 다수의 선택에 따르는 상황에 익숙하지만, 율장에서는 결코 '다수'를 '여법'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여법은 명확한 근거가 있어야 하며, 문제제기에 대한 공감대와 다수의 지지, 그에 대한 정확한 확인 절차와 원칙에 따른 해결, 그리고 이를 기반으로 한 구성원의 설득 내지 동의가 동반되어야 한다."(이자랑, <개혁종단의 징계에 대한 율장적 검토>)
4. 자승 전 원장의 상왕정치는 멈추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