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표지 @김슬옹 이만열, 이연실 지은 책 제목
김슬옹
이 책은 두 책인 듯한 책으로 이만열 작가가 쓴 <외국인이 보는 한국>과 이연실 작가가 쓴 <한국인이 보는 외국>으로 구성되어 있다. 글 꼭지 수는 앞부분이 많지만, 양은 비슷하다. 이연실 작가는 이런저런 인연으로 여러 번 만나 보았지만, 임마누엘 작가는 처음 만나 봤다.
두 사람 모두 타자에 대한 배려가 스며 있는, 본명 같은 딴 이름을 갖고 있다. 한국인인 이연실 님은 '체리'라는 외국어 이름을, 미국인이지만 지금은 한국 국적까지 갖고 있는 임마누엘 님은 '이만열'이라는 한국 이름을 더 사랑하고 있다.
싱가포르에 살던 시절부터 그동안 20년 넘게 지구촌 200개 나라 이상 소통하며 살아온 이연실 님은 '연실'이란 이름을 외국인들이 어려워하고 잘 기억 못 해서 '연실(姸實)'의 '고운 열매. 사랑스러운 열매'의 뜻을 살려 '체리'라고 지었다고 한다. '체리'라는 이름은 발음이 쉽고 듣기 쉽고 외우기 쉬워 외국인 친구들이 다 좋아한다고 한다.
임마누엘 님은 1997년에 한국인과 결혼하면서 장인 어르신의 성을 따 장인이 직접 지어준 이름을 갖게 되다 보니 본의 아니게 데릴사위가 되었다고 하면서 너털웃음을 지었다.
이만열 님은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잘 아는 미국인'으로 연예인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한국인만 몰랐던 더 큰 대한민국>(2017)과 같은 기존의 저서나 유튜브에 올라와 있는 30여 개 방송 출연, 각종 대중 매체 칼럼에서 한결같은 주장은 한국인들이 정작 한국의 잠재력과 한국의 가치를 제대로 모른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단군 사상과 홍익 정신, 선비 정신 등과 같은 정신적 가치부터 최치원, 이순신, 정약용 등 인물 정신, 한옥, 한글과 같은 한국의 정체성 관련 전통문화 등이다. 이러한 한국다움이 첨단 산업과 한류에 반영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인기를 얻었다는 것은 많은 한국인들이 그의 호소에 공감했다는 의미다. 우리 사회가 파란 눈의 외국인에게 박수를 보낸 것은 그가 하버드대 출신이어서가 아니라 우리의 전통 문학을 전공하고 가르쳐온 탄탄한 학문적 배경과 1995년 교환 학생 시절부터 10년 이상 한국 사회에서 직접 온몸으로 경험한 내공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의 호소가 널리 알려진 지 족히 5년은 넘었는데 그럼 우리 사회가 얼마나 변했는가에 대해 이번 만남을 통해 직접 물어봤다. 예상했던 대로 변한 것이 별로 없기에 이번 책이 나왔고, 직접 설명하는 그의 육성은 애정이 어린 엄마의 훈계와 같았다.
더욱이 이 책에서 더욱 강조된 것은 한국 사회의 자아 분열적 이중적 태도라는 것이다. 한글이 가장 과학적이라고 자랑하면서 정작 영어 남용과 같이 한글을 무시하고 깔보는 것은 한국인이라는 것이다.(173~182쪽)
이 점에 대해서는 평생 한글 운동을 해온 필자보다 더 흥분해 내 영혼이 빙의된 것이 아닌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여러 외국어 논문을 존중하지 않고 영어 중심의 편향된 학문 사대주의는 마치 명나라 말 조선 지식인들이 망한 명나라를 숭배하는 것과 같다는 질타도 서슴지 않았다.
한국 사회의 이중적 태도에 대한 질타는 이연실 작가도 마찬가지였다. 미국의 인종차별은 비판하면서 정작 우리나라의 중요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해서는 차별하고 있다는 것이다.
자신이 경험해 본 수많은 외국인 가운데 70%가 한국의 문화와 음식을 좋아하면서도 정작 다시는 안 오겠다고, 원한 같은 원한을 품고 한국을 떠나는 외국인이 많다는 그의 탄식에는 한숨이 길게 깔렸다. 눈에 보이는 화려한 케이팝 같은 한류보다 우리나라와에 와 있는 외국인 한 명 한 명이 한국을 좋아하게 되면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한류의 시작이라는 것이다(246쪽).
한국다움의 확산에 대한 이만열 님의 열정 어린 호소와 한국다움에 빠진 외국인들을 지구촌의 진정한 이웃으로 대해야 한다는 이연실 님의 폭포수 같은 호소가 많이 닮아 있었다. 그러고 보니 두 저자의 미소가 이만열 님이 극찬한 얼굴무늬수막새의 미소를 닮았다. 하긴 지구별의 모든이의 미소는 누구나 소통되고 공감되는 기호 아니든가? 아래는 두 저자와의 일문일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