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경기전 정전에 전시된 태조 이성계 어진과 두 자루의 칼
김경준
혹 그 두 자루의 칼이 용두검은 아닐까 하는 마지막 기대를 품고 경기전을 관리하는 전주시 전통문화유산과에 질의 민원을 넣었다. 그러나 일주일 만에 날아온 회신은 실망스러웠다.
"해당 유품이 회수되었다는 기록이 존재하지 않아 회수되지 못한 것으로 판단됩니다."
정전 앞에 세워진 두 자루의 칼은 경기전의 구조 등을 기록한 <경기전의>(慶基殿儀)에 '운검(雲劒) 1쌍을 정전 안 정문 좌우에 세워둔다'고 쓰여진 기록에 따라 고궁박물관의 전어도를 모사하여 세워둔 모조품이라는 것. 운검의 정확한 형태를 알 수 없어 전어도를 모사했다고 하니, 어쩌면 운검이 바로 용두검은 아니었을까.
이성계의 어검(御劍), 세상에 다시 드러나길
용두검이 실제 이성계가 썼던 칼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조선왕조실록>에서도 용두검의 존재는 확인되지 않는다. 의장용으로 후대에 세워졌을 가능성도 높은 것이다.
그러나 경기전에서 대대로 보관하며 내려왔다는 점에서 이성계의 유품이었을 가능성은 전어도보다 훨씬 높다고 할 수 있다. 설사 이성계가 직접 쓴 칼이 아니라고 해도 역사적 가치를 굳이 깎아내릴 필요는 없다.
혹자는 한국사의 3대 무기로 이성계의 '어궁(활)'과 이순신의 '쌍룡검', 안중근의 '권총'을 꼽으며 반드시 찾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나마 세 유물은 실물을 촬영한 흑백 사진이 남아있어 그 모습을 상상하는 것이 어렵지 않다. 반면 이성계의 용두검은 사진 등의 기록이 전혀 남아있지 않아 그 형태를 가늠조차 하기 힘든 현실이다.
가장 안타까운 건 용두검을 잃어버렸다는 사실 자체도 모르는 이들이 많다는 것이다. 물론 도난 당시 범인이 원형을 알 수 없게 파손해버렸다고 하니 되찾을 가능성이 희박하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그러나 범인이 사실대로 진술했으리란 보장도 없지 않은가. 지금 어디선가 누군가의 손길을 기다리며 잠자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니 용두검을 찾으려는 노력도 결코 게을리해서는 안될 것이다. 언젠가 이성계의 칼이 다시 세상에 드러난다면 바로 한국사의 성물(聖物)이자 국보(國寶)가 될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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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 전공 박사과정 대학원생 / 서울강서구궁도협회 공항정 홍보이사 / <어느 대학생의 일본 내 독립운동사적지 탐방기>, <다시 걷는 임정로드>, <무강 문일민 평전>, <활 배웁니다> 등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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