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형색깔의 건물은 이국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홍기표
흰여울마을은 절벽에 매달린 마을이었다. 아슬아슬하게 산등성이를 타고 올라간 건물들은 전쟁과 자본에 밀려 나온 사람들의 살아보겠다는 절박한 심정을 말해주는 것 같았다. 영화 <범죄와의 전쟁>(2012), <변호인>(2013) 등에 등장하면서 알려지게 된 이 마을은 '문화'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곳에서 문화라는 게 정확히 어떤 의미를 내포하는지 잘 이해할 수는 없었으나, 절벽을 따라 이어진 좁은 해안길을 걷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었다. 해안길을 따라 형형색색으로 칠해진 건물들 대부분이 카페로 변해 사람들의 발걸음을 돌려세워 잠시 쉬어가도록 했다. 그 안에 몇몇 잡화점과 수공예품점이 있어 보는 재미도 솔솔 했다.
눈 부신 햇살을 안은 파도가 다가와 절벽 아래에서 부서지며 철썩 소리가 울린다. 그 위로 넓은 정원이 딸린 카페에서 흘러나오는 클래식 음악이 얹히자 묘한 분위기가 연출됐다.
실거주지는 얼마 없는 것 같았다. 동피랑, 감천마을처럼 '사람이 살고 있다'라는 안내판이 달린 집 창문 안은 대부분 텅 비워져 있었다. 공사를 하다가 멈춘 어느 집에는 구경 나온 사람들이 "나도 여기서 뭐라도 해볼까"라는 말을 툭툭 내뱉고 있었다. 사람들은 이 해안 절경 속에 어떤 문화를 만든 것일까. 사진을 찍으며 기분 전환을 하고 좋은 상권을 따지는 것 외에 어떤 특별함을 느낄 수 있는 것일까.
미로처럼 엉킨 흰여울 마을을 올라가면 이차선 도로가 나온다. 그 작은 도로 사이로 관광지와 생활지가 나뉜다. 좁은 동네에 주차 공간이 부족해 짧은 등산을 해야 닿을 수 있는 주택가에 있는 공용주차장에 차를 댔다. 가는 길에 보이는, 길 건너 낮은 아파트의 빛바랜 외벽 페인트와 녹슨 창살은 을씨년스러웠다.
'이제 조금만 올라오면 됩니다'라는 문구가 적힌 어린이집 안내판이 보였다. 힘겹게 고개를 오를 수 밖에 없는 주거환경을 가진 이들에게 격려와 응원을 보내는 것 같았다.
흰여울 마을이 알려진 지 오래다. 그 시간 동안 과연 무엇이 더 나아졌을까. 이곳에서 우리는 어떤 특별함을 얻으려고 하는 것일까. 우리의 발걸음은 그들에게 어떤 희망이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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