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판은 반갑지 않다. 나이 들수록 낭만은 줄고 두려움은 커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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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지론이다. 문제는 대로였다. 달리는 바퀴들로 더 다져진 데다가 자세히 보면 대로 중앙선이 살짝 올라와 경사져 있어 위험천만하다. 물빠짐 때문이겠지만 빙판이 되면 누구도 방심할 수 없는 난코스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경사가 더 무섭다.
넘어지면 큰 일 난다고 생각한 엄마는 아예 기어가기로 했다. 엉덩이만 살짝 들었을 뿐 두 손도 땅을 짚었다.
"누가 봤으면 개가 지나가는 줄 알았을 거여."
그렇게 엉금엉금 도착한 집 앞에서 안도의 한숨도 잠깐. 열쇠가 만져지지 않았다. 아이쿠! 눈 앞이 캄캄했다. 엄마는 네 발로 돌아가야 했다. 그 심정이 오죽했을까. 이쯤해서 그만 딸 집에서 자도 되련만. 엄마는 키를 들고 다시 당신 집으로 향했다. 왕복도 아니고 왕복을 두 번이나 한 셈이다.
엄마 말로는 한 시간은 족히 걸렸을 거라 했다. 밤새 엉거주춤 미끄럼을 타며 가슴 졸였을 엄마를 생각하면 현장에 있는 것처럼 조마조마하다. 달리는 차라도 있었으면 어찌되었을지. 자칫 넘어지기라도 했다면. 다행히 넘어지지 않아 추억이 되었지만 엄마의 극성스런 고집을 대변하는 일화가 되었다.
20여 년이 흘러 달라지긴 했다. 아무리 내 집이 좋아도 아프면 내려놓아야 한다. 자식들 집에서 지내다 병원으로, 지금은 요양원이 집이 되었다. 낯선 침대와 공동생활이 이제는 적응 되었으려나.
"야야, 내가 잠이 안 와서 약을 좀 더 달라는디 왜 안 주는 거여. 내가 지금 죽어도 아쉬울 게 없는 나이에 뭐가 무섭겄냐. 니가 말 좀 혀라."
엄마의 목소리는 여전히 쩌렁쩌렁하다. 치매에 걸리지 않기 위해 침대나 휠체어에서도 손과 발 스트레칭을 멈추지 않는다. 정신 줄 하나 만큼은 놓치지 않고 살고 계시니 엄마의 고집도 쓸 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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