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석 신부와 섬마을인생학교 참가자들이 도초도 시목해변에서 누워있는 모습
섬마을인생학교
- 처음 뵙던 곳이 목포에서도 1시간 배를 타고 가야 하는 도초도입니다. 어떻게 서남해안 먼 섬까지 발걸음을 하셨나요?
"함께 동행한 이들이 도초도와 섬마을인생학교 이야기를 했어요. 사실 섬에 간다는 게 처음에는 엄두가 나질 않았죠. 그러다가 이준익 감독 영화 <자산어보>를 봤는데 정약전의 유배지가 정말 절경이더군요. 한번 가봐야겠다 싶었어요."
- 도초도에서 섬마을인생학교 프로그램도 참여하셨는데 어떠셨나요?
"처음에는 인생학교가 어떤 교육을 할 수 있을까 궁금했어요. 직접 가보니 기대를 뛰어넘는 시간이었어요. 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가 청소년을 위한 꿈틀리인생학교와 어른을 위한 섬마을인생학교를 이야기하면서 한국사회에 인생설계를 위한 쉬는 시간, 즉 '갭이어'가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는데 굉장히 공감이 됐어요. 우리나라는 청소년들이 얼마나 강박을 받으면서 학교 생활을 하고 있습니까.
영국 유학 시절에 저희 아이들 보면 학교 끝나는 3시 이후에는 그냥 친구들하고 놀아요. 그렇게 자연에서 뛰놀고 하는 게 사실 '창조의 원천'이 되거든요. 이건 어른들도 마찬가지고요. 인생에서 쉼과 여유를 통해서 창조성의 토대를 갖추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특히 섬마을인생학교에 머물면서 '갭이어' 제도를 대학에도 도입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요즘은 졸업을 앞두고 진로 모색이나 여러 이유로 휴학하는 학생들이 참 많습니다. 휴학기간 동안 대학이 지도교수를 정해서 멘토링, 혹은 코칭 관계를 맺고 어학연수나 인턴쉽, 여행, 체험, 독서, 취미 개발, 시간 보내는 방법 등을 안내해주는 제도를 만들어보는 거예요. 이렇게 하면 휴학기간을 훨씬 알차고 의미 있게 보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우리나라는 대학에 진학을 하고 나서 진로를 고민하는 경우가 많아서 대학생을 위한 '갭이어'가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실 신부님께서도 대학시절에 일종의 '전환의 순간'이 있으셨지요?
"저의 경우도 삶의 전환점들이 있었지요. 특히 항공대를 다니던 중에 신학교로 진로를 전환하는 시간이 있었고요. 그때를 돌이켜보면 그간 내가 살아온 삶에 대한 집착, 미래의 진로 같은 고민이 있을 수밖에 없었죠.
그럴 때 잠시 멈추거나 쉬는 순간이 필요한 것 같아요. 쉼은 그 간의 집착을 떠나보낼 수 있는 '틈'을 준다는 점에서 중요한 것 같습니다. 그 '쉼의 순간'이 내가 지금까지 하던 걸 아까워하거나 미련을 두지 않고 새로운 결정을 하는 계기가 될 수 있는 거죠."
- 지난 성공회대 졸업식 축사에서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를 인용하시면서 "종이 조각을 좆는 삶보다는 꿈과 신념을 쫒는 삶을 선택하길 바란다"고 말씀하신 것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인생을 살면서 '다른 길이 없는 건 아니다'라는 걸 전해주고 싶었어요. 영화감독 톰 새디악이 2010년에 <아이엠>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만들었어요. 인생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답을 찾아가는 건데, 저는 이 작품을 보면서 마치 21세기의 성경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영화감독으로 성공해서 큰 저택에서 살게 됩니다. 그 순간에 허무감이 밀려왔다는 거죠. 도대체 인생에서 중요한 게 뭘까. 이 다큐에서 그런 비유를 들어요. 산속에서 비를 맞으며 길을 잃었어요. 다행히 오두막을 발견하죠. 오두막의 주인이 나와서 맞이해주고 모닥불을 지펴주고 따뜻한 차를 내줍니다. 너무나 감사하죠. 그런데 이 사람이 일상으로 돌아왔을 때 이 경험이 전혀 중요하지 않게 되는 거예요.
같은 맥락에서 '돈'도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필요할 때는 생명과 같은데, 필요 이상이 되면 더 이상 효용이 추가되지는 않거든요. 한국사회가 '돈'에 대한 강박에서 벗어나서 각자의 꿈을 펼치는 자유로운 삶을 살아가셨으면 합니다."
"<여명과 혁명, 그리고 운명> 일독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