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의 한 코로나 검사센터의 모습검사 담당 직원들은 피검자의 신분증을 받아들기 전후에 소독도 하지 않고, 수십 명의 테스트기를 책상에 죽 늘어놓고 면봉을 그대로 갖다 댄다.
김나희
5일째 새벽 3시. 문자 메시지로 연락이 왔다. 우리 가족 중에 나만 양성이었다. 환자가 너무 많이 발생해서 내게도 언젠가는 닥칠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정작 연락을 받으니 패배감이 엄습했다. 내가 무엇을 잘못했을까 싶어 죄책감마저 들었다. 무엇보다 무증상 기간인 –1일, 0일에 만난 2명의 친구에게 미안해서 잠이 잘 오지 않았다. 다만 증상이 시작된 뒤로는 아무도 만나지 않아서 수퍼전파자가 되는 것은 막았다는 생각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아침이 되자마자 친구들에게 연락했다. 검사를 해보고 결과가 나오는 대로 알려달라고 부탁했다. 나는 기침이 좀 더 심해졌고 피로감이 생겼다. 후각과 미각은 있었지만 식욕은 떨어졌다. 무엇보다 너무 우울했다. 며칠 전부터 머리가 멍한 증상(brain fog)은 이제 보니 코로나 때문이었나 보다.
쓰고 있던 논문(마침 논문 주제는 '모유의 코비드19에 대한 보호효과')을 겨우겨우 완성해서 보내고 "나 코로나 걸려서 더 이상은 못 들여다보니 교정은 알아서 봐주세요"라고 부탁했다. 단기적 인생 목표가 '코로나에서 빨리 회복되기'로 급변했다. 무조건 쉬기로 했다. 한의사협회에서 해외체류자들에게도 무료로 처방해줘 받아뒀던 코로나 치료 한약 청폐배독탕이 마침 몇 포 남아 있어서 복용했다. 복용할 때마다 조금씩 증상이 좋아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남은 약은 충분하지 않았다.
우리 가족은 격리기간을 다시 산정해야 했다. 나는 증상이 있던 날부터 10일, 다른 가족은 나와 마지막으로 접촉한 날부터 10일이었다. 그러니까 남편과 아이는 자가격리기간이 4일 더 늘어나게 됐다.
6일째. 다행히 밀접접촉한 친구들과 그 가족들은 모두 음성이었다. 하지만 –1일째 만난 친구네는 부랴부랴 파리 학회 일정을 다 취소했다고 한다. 마음이 너무 무거워서 자꾸 꿈에 나왔다. 콧물은 아직 있는 채로 새벽 기침이 심해졌다. 자다 말고 물주머니 형태의 핫팩을 목과 어깨, 가슴에 두르고 자니까 기침이 많이 줄었다. 기침에 잘 듣는 한약 삼소음 네 포가 남아 있어서 자기 전마다 아껴서 복용했다.
부모님과 영상통화할 때는 애써 멀쩡한 척 했다. 남은 체력을 모두 모아 제네바 시민대학의 한국어 수업을 온라인으로 진행했다. 학생들에게 지금 나 코로나 걸렸다고 하니 놀란다.
7일째. 애시당초 오미크론 때문에 학교 락다운이 되면서 8000명이 검사를 하게 된 것이라 검사 결과가 나오는 대로 오미크론의 역학이 윤곽을 드러낼 것이라고 생각했다. 처음 감염자 2명에게서 몇 명이 걸리고 또 그들로부터는 몇 명이 걸렸으며 잠복기는 며칠인지 파악하게 될 것이고 특징적인 증상들은 무엇무엇인지 알게 될 것이라 생각했다. 비록 우리가 원치는 않았지만 열흘 락다운이 전세계에 오미크론 역학을 알려주는 역할을 하겠구나 싶었다.
'자발적'으로 검사 결과를 입력하라고?
그런데 충격적이게도 보건당국은 우리의 검사결과를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학생과 교직원 및 그 가족들이 '자발적으로' 검사결과를 학교 웹사이트에 입력하면 학교에서 그 결과를 모아서 보건당국에 보내준다고 했다.
어디까지나 '자발적'인 입력이라, 안 하면 그만이고, 거짓으로 입력해도 그만이었다. 학교도 보건당국을 돕는 차원에서 자료를 수집한다고 했다. 보건당국의 검사 명령서를 가지고 검사센터에 가면, 검사센터에서 착착 알아서 결과를 보건당국에 자동 전송해서 자동 집계돼야 정상 아닌가? 대체 시스템이 어떻게 돌아가는 건가 싶었다.
8~9일째. 기침이 있지만 심하지 않다. 2차 백신까지 접종을 마쳐서인지 비교적 가볍게 지나가는 것 같다. 머리가 멍한 증상은 누워만 있어서 생긴 것인지 코로나 때문인지 모르겠다. 가족들과 거리를 많이 두면서 집안일을 하기 시작했다.
9일째. 증상이 없으면 10일째인 다음날 나는 완치로 분류돼 자가격리에서 풀린다. 아직 피로감이 있고 감기 뒤끝같은 마른기침이 있는데 증상이 남았다고 해야 할까, 다 나았다고 해야 할까. 무증상이면 자동 해제인데, 증상이 남아 있으면 보 주 보건당국으로 전화를 해서 신고하란다. 양심적으로 살자는 생각에, 미진하게 남은 증상이 있다고 신고하려 전화를 걸었다. 모든 회선이 통화 중이다. 다시 걸었다. 역시 통화 중이다. 계속 시도해도 통화 중이라, 어쩔 수 없이 신고를 못했다.
하도 누워 있었더니 허리가 아팠다. 그리고 식사량이 대폭 줄어들고 운동을 전혀 못한 상태로 살았더니 정말 허약해진 기분이었다. 어지럽고 머리가 핑 돌았다. 감염 상태에서는 우리 몸이 혈중 철분 농도를 낮추기 때문에 빈혈 증상도 생긴 것 같았다.
아. 이래서 고령자들이 아프면 줄줄이 문제가 생기는구나. 아파서 운동을 못 하면 허리가 아프고 허리가 아프면 또 운동을 못 하고 운동을 못하면 균형감각이 떨어져서 넘어져 다치기 쉽고 넘어져서 골절 생기면 또... 악순환이 이어지겠구나 싶었다.
10일째. 드디어 나는 자가격리에서 풀렸다. 남편과 아이는 아직 격리 중이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약국에 가서 자가테스트기를 샀다. 너무 오랜만에 움직여서인지 코로나 후유증인지 조금만 걸어도 숨이 찼다. 그래도 한 줄로 음성 결과가 뜨는 걸 보는 순간, 기분이 확 좋아졌다. 2주만에 장도 봤다. 집에 와서 남편과 아이도 테스트를 해봤는데 다행히 둘 다 음성이었다.
11일째. 어이없는 일을 또 겪었다. 확진자의 가족도 재검 결과 음성이 나오면 일찍 격리에서 해제될 수 있는데, 12세 미만 어린이에 대한 설명이 애매했다. 프랑스어 버전에는 '12세 미만은 검사 없이 무조건 10일을 채워야 한다'고 돼 있고, 영어 버전에는 '12세 미만은 아무 검사나 해도 된다'고 돼 있었다. 같은 공식 문서가 이렇게 달라도 되는 건가? 고민 끝에 우리는 영어 버전에 맞춰 검사를 하러 갔다.
재검은 신속항원검사였는데, 센터 직원이 실수로 PCR검사를 해 버렸다. 물론 PCR을 해도 되지만 결과가 늦게 나온다. 이때 신속항원검사로 다시 해달라고 했어야 하는데, 우리는 내일 아침이면 결과를 받을 테니 큰 차이가 없을 거라 생각하고 그냥 떠났다. 이게 작은 패착이었다.
12일째. 늦어도 아침에 검사결과를 받을 줄 알았는데 안 온다. 오전 내내 혹시나 아이가 학교를 갈 수 있지 않을까 싶어 나까지 아무 데도 못 가고 기다렸는데, 결국 포기했다. 오후 늦게야 음성 결과가 도착했다. 결과를 받자마자 아이와 2주만에 감격의 포옹과 뽀뽀를 했다. 아이는 자가격리로 밖에 나가지 못하는 데다가 거의 2주째 엄마와 포옹도 하지 못하고 가까이 가지 못해 힘들어했다.
완치 3주가 지났지만 여전히 호흡이...
이제 완치 3주째인 나는 남은 감염 증상은 없는데 여전히 숨이 차다. 계단을 조금만 올라도 숨이 가쁘다. 확실히 기분 탓은 아니다. 코로나 걸렸었다는 사실을 전혀 인식하지 않다가도 몇 계단 오르면 숨이 차서 '아, 맞다. 나 코로나 걸렸었지'라는 생각에 다시 덜미를 잡히기 때문이다.
숨이 차서 운동을 할 수가 없으니 몸이 너무 찌뿌둥하고 기분이 우울하고 머리도 맑지 않고 소화도 잘 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의지로 극복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코로나 이후 운동은 단계적으로 체력에 맞춰서 해야 하기 때문에, 내가 불굴의 의지를 내어 억지로 운동을 하면 오히려 역효과다. 조금씩 개선되는 만큼 활동을 늘리는 수밖에 없다.
코로나가 '감기 수준'이라고 하는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다. 감기 걸리고 나서 이렇게 숨이 찼던 적이 없다. 백신을 접종했고 충분히 쉬고 한약도 복용할 수 있었기 때문에 증상이 심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감기보다는 훨씬 독하다.
면역이 떨어진 사람들이나 고령자에게는 정말 무서운 질환일 수 있다. 한의학에는 직중장부(直中臟腑)라는 개념이 있다. 콧물, 재채기, 두통, 뒷목 뻣뻣함 등 겉부터 증상이 시작되지 않고 심층의 장부에 바로 타격을 주는 질환을 말한다. 2020년 초에 논문을 읽으며 한숨이 절로 나왔다. 코로나는 폐의 수용체에 바로 결합해 코나 인후 증상 없이 바로 폐 증상이 시작되고, 심근염, 급성 콩팥 손상, 뇌 손상도 가져올 수 있는 '직중장부'의 질환이었기 때문이다.
그 이후로도 코로나 검사를 더 받을 일이 있었는데, 스위스의 검사 센터 수준은 정말 충격적인 수준이다. 센터 직원은 피검자의 신분증을 받아들고 이름을 적고 돌려주고 소독 없이 다음 피검자의 신분증을 받아든다. 책상 위에 쿠키를 두고 먹고 있고 심지어 마스크를 내리고 일하는 직원도 있다. 바코드도 찍지 않고 사람들이 온 순서대로 테스터를 그냥 책상 위에 줄줄이 늘어놓고 면봉을 갖다 댄다. 센터 문 바로 밖에서 사람들이 담배를 피우고 있어서 담배 연기가 검사 센터로 들어온다.
검사 센터가 이런 수준이니 일반 시민들은 말할 것도 없다. 기차역 플랫폼에서는 흡연자들이 마스크를 내리고 담배를 피운다. 철도 직원들도 턱스크를 하고 있으니 누가 제지를 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