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식으로 재구성해 본 청첩장. 맨 아래에 '동영부인'이라 적힌 것은 '영부인과 함께 오라'는 뜻이다.
장호철
'令(령)'은 ① 명령할(령),② 법률, 규칙(령) ③ 우두머리(령),④ 높일(령) 등의 뜻을 갖는데, ① 영장(令狀), ② 법령(法令), ③ 현령(縣令), ④ 영애(令愛)와 같이 쓰인다. '영부인'의 '영'은 물론 '영애'와 같은 의미다. '영애'는 "윗사람의 딸을 높여 이르는 말"이고 '영식(令息)'은 "윗사람의 아들을 높여 이르는 말"이다. (표준국어대사전 참고)
'남의 아내'를 두루 가리켰으나 '대통령 부인' 지칭으로 굳어져
영애나 영식은 '윗사람의 딸, 아들'을 이르지만, 영부인은 '남의 아내'를 두루 가리킬 수 있는 낱말이다. 그런데 이 낱말은 쓰임새가 줄면서 대통령의 부인을 가리키는 말로만 주로 쓰이니 그 의미 영역이 축소된 셈이다. 오늘날 영부인이란 낱말은 천천히 사라져가는 말이다. 같은 뜻이라는 '귀부인, 영규, 영실, 영정, 합부인'이란 낱말도 사실상 쓰이지 않는다.
'부인(夫人)'도 "남의 아내를 높여 이르는 말"이다. 따라서 자기 아내를 이르는 말로 쓸 수 없다. 가끔 텔레비전에서 출연자들이 자기 처를 '우리 부인'이라고 이야기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실례다. 자기 배우자를 이를 때는 '처'나 '아내'를 쓰면 된다.
일반인들이, 같은 뜻의 '부인'이 있는데 굳이 대통령 배우자를 이르는 말로 굳어진 영부인을 쓸 일이 없어졌다. 영식이나 영애도 마찬가지다. 1997년 박아무개라는 의사가 당시 김영삼 대통령의 차남 비리를 폭로하면서 계속 쓰던 '영식님'이 인상적으로 기억에 남아 있다.
한글 전용으로 '한자로 된 호·지칭어' 사라지고 있다
그러나 '영식'이나 '영애'는 호칭어가 아니라 지칭어다. 그런데 위 그림에서 보는 것처럼 '아드님'이나 '따님'으로 써도 충분하므로 오늘날 이 낱말도 거의 쓰이지 않는다. 사전에 영식·영애와 비슷한말로 제시한 '영랑·영윤·영자·옥윤·윤군·윤옥·윤우·윤형'(영식)이나 '규애·애옥·영교·영녀·영랑·영양·영원·옥녀'(영애)도 이미 사어(死語)에 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