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동의 <국수>는 문재인 대통령이 몇 해 전 여름휴가 때 읽어 화제가 된 소설이다.
솔출판사
그것이 외적인 문제에서 발생했든, 내부에서 생겨난 것이든 고통은 인간에게 사색의 시간을 제공한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창궐하면서부터 바깥에서의 활동이 눈에 띄게 줄어든 2년 가까운 세월. 우리는 조용히 자신의 내부를 들여다보는 경험을 싫든 좋든 하고 있다.
스스로의 심연(深淵)을 바라보는 행위는 비단 철학자나 문인이 아니라도 반드시 필요할 터. 그러니 바이러스로 인해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난 게 마냥 나쁜 것만은 아닐 수도 있다.
주말이면 가까운 곳이든 먼 곳이든 다니던 나들이, 퇴근 후 동료 혹은, 연인과 어울려 가지던 술자리가 부쩍 줄어든 지난해와 올해. 그걸 대신해 자아를 살피는 침잠의 순간을 가지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바로 그 '자아 성찰'의 중요한 도구가 돼주는 게 책읽기다. 특히나 추위에 외출이 줄어드는 이 계절엔 더욱 그렇지 않을까.
<만다라>와 <국수>를 필두로 김성동의 소설들은 진중함과 진지함을 담고 있어 그 문장들 속에서 스스로를 돌아볼 기회를 가지게 한다. 이런 평가엔 한국의 문학비평가들 대부분이 동의하고 있다.
독자를 다독이는 진중하고 의로운 문장은 어디서
김성동은 병자호란 때 순국한 선원 김상용(金尙容·1561∼1637)과 1910년 8월 경술국치(庚戌國恥) 때 스스로 곡기를 끊어 자결한 김창규(金昌圭)의 후손이다.
김상용은 조선 중기의 문신. 1590년 병과에 급제해 승문원부정자와 예문관검열 등을 지냈고, 병조와 이조의 판서였으며 '만인지상 일인지하'라는 정승에까지 올랐다. 그의 시와 글씨가 지닌 품격은 당대 최고로 인정받았다.
김상용이 일흔 살이 넘어 맞게 된 병자호란. 원로대신인 그는 왕세자의 아내와 장남을 보필해 강화로 피난한다. 그러나, 강화의 수비를 맡은 벼슬아치는 "여기까지 오랑캐가 올 일이 없다"며 전쟁 중임에도 주지육림에 빠져든다. 그 오판 탓에 백성들이 도륙된다.
그러한 비극을 지켜보던 김상용은 화약이 보관된 망루에 올라 임금이 있는 곳을 향해 세 번 절하고는, 하인을 모두 피신시키고 화약에 불을 붙여 자결한다. 나라를 지켜내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던 선비가 택할 수밖에 없었던 불가피한 처신이었을 것이다.
세월은 흘러 1880년. 앞서 말한 김창규가 태어난다. 여섯 살에 <논어>와 <맹자>, <중용>과 <대학>을 읽던 영민한 소년이었다. 열네 살이던 1894년. 갑오개혁이 있던 그해 조선의 마지막 과거시험에 급제해 왕으로부터 '교지(敎旨)'를 받은 김창규.
그 역시 김상용처럼 스스로 목숨을 버린다. 1910년 굴욕적 한일합방 소식을 접한 직후다. "오얏나무 꽃이 떨어졌으니 이제 이곳은 내가 머물 땅이 아니다"라고 일갈한 뒤 스스로 방문에 못질을 해 곡기를 끊은 것. 겨우 서른의 나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