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가 주는 공황과 우울을 잠시나마 잊게 해줄 소설 <만다라>.
새움
이상했다. 분명 그 소설엔 '희고 탄력 있는 여인의 육체' '붉은 등이 켜진 사창가'라는 표현이 등장했고, "나는 그 여자와 2층을 만들었다"는 등의 성적인 은유가 담긴 문장이 곧잘 나왔지만 그것들이 불러일으키는 감정은 에로틱하다기보다는 서글펐다. 궁금증을 풀어준 것은 사촌형이었다.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쓴 글에서만 읽히는 슬픔이야. 그 사람 승려였어. 소설을 썼다는 이유로 불가(佛家)에서 축출 당했지. 그렇게 맑고 정직한 사람이 속세에서 얼마나 견딜 수 있을지…. 모르긴 해도 곧 다시 절로 돌아갈 걸."
처음으로 책이 나온 후 여러 출판사에 의해 수차례 재출간된 <만다라>. 출판사 새움은 이 소설을 아래와 같은 명료한 문장으로 요약하고 있다.
"한국 불교소설의 백미로 평가받는 김성동의 '만다라'는 저자가 20대 젊은 날에 겪은 삶에 대한 번민이 고스란히 서려 있는 잿빛 노트이면서, 당시 산업화의 병폐가 나타나고 있던 한국사회와 속세의 가치를 탐했던 불교에 대한 직관적인 비판이 녹아 있는 작품이다. 그러나 종교적인 내용들을 모른다고 해서 작품을 어렵게 생각할 필요는 전혀 없다. '만다라'는 불교라는 상자 안에 인생의 진리를 찾아 방황하는 청춘들의 이야기를 담아, 그 안에서 새로운 가치를 모색해 보려는 시도이며 맹목적으로 불교의 교리가 주입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정확한 이야기다. 몇 번을 다시 읽은 <만다라>는 불교라는 종교적 틀 안에서만 해석되는 작품이 아니다. 거기엔 인간 보편의 고뇌와 거기서 빠져나와 참된 생의 가치를 찾으려는 젊은이의 발버둥이 핍진하게 그려져 있다.
출간된 지 42년이 지났지만 <만다라>가 여전히 독자들의 관심과 사랑 속에서 생명력을 유지하는 이유는 바로 이 보편성과 현재성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1970년대 인간들이 겪었던 고통과 수난은 그 형태와 양상을 달리해 2021년 오늘의 사람들을 괴롭히고 있다. 코로나19 바이러스도 아마 그중 하나가 아닐까? 그렇다면 소설 속에는 고통과 수난의 해결 방식도 담기지 않았을까? <만다라>를 펴든다는 건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일 터.
상대의 손을 따스하게 잡아주는 '위로의 힘'을 아는 작가
작가 김성동을 실제로 본 것은 책을 접한 지 15년쯤이 흐른 뒤였다. 좋아해온 소설가를 대면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부풀었다. 그러나 '만다라'에 이르는 길은 수월치 않았다.
법명 정각(正覺), 속명 김성동(金聖東)을 찾아가는 길엔 애초 선배 두 명이 동행키로 약속돼 있었다. 하지만 만남이 있던 날, 그 둘은 예기치 않은 일을 이유로 함께 갈 수 없음을 알려왔다.
난감했다. 초행길을 혼자 나서야한다는 당혹감은 물론이거니와, 더 곤혹스러운 건 김성동과 둘이 마주앉아 대체 무슨 말을 해야 할까하는 난처함이었다. 당시 김성동은 경기도 양평과 강원도 화천의 중간 지점에 살고 있었다.
버스에 올라서도 걱정은 여전했다. 하지만 버스가 서울 시내를 벗어나 교문리를 지나고, 다산 묘소에 이르자 들썩이던 심장이 다소간은 가라앉았다.
도심에서 고작 30여 분을 달렸을 뿐이지만, 차창을 스치는 풍광은 도시의 그것과는 천양지차였다. 오랜만에 달려본 시골길은 아름다웠다. 김성동의 소설에서 묘사되는 풍광처럼. 코앞까지 다가온 산에는 희끗희끗 잔설이 저녁 햇살에 빛나고, 팔당댐의 물빛은 울렁거리던 가슴을 진정시키기에 넉넉했다. 혼잣말을 했다.
"그래 가보자. 정각의 말처럼 진리는 길 위에 있고 나는 지금 길 위에 서있지 않은가."
양수리에서 완행버스를 타고 양평, 거기서도 4~5km를 더 들어가는 골짜기. 김성동의 집에 도착했을 땐 짧은 해가 지고 어둠이 내리고 있었다.
가방을 내려놓고, 외투를 벗으며 그와 악수를 나눈 순간. 그때까지도 완전히 떨쳐내지 못하고 있던 두려움과 막막함의 부스러기를 훌훌 털어낼 수 있었다. 김성동의 손이 너무도 따뜻했던 것이다.
앞서 '코로나19 시대'의 위로에 관해 이야기한 바 있다. 어려움과 공포 앞에 서있는 인간을 위로하는 힘은 무엇보다 따스한 온기일 터.
김성동의 문장에선 떨고 있는 사람의 어깨를 다독여주는 손길이 느껴진다. 비단 <만다라>만이 아닌 다른 작품들에서도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