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 캄파넬라를 완주한 어부 요시아키 토쿠나가 씨테트리스 게임처럼 막대기가 떨어지는 영상으로 건반 위치를 확인하고 해당 음을 찾아 누르며 외우기 시작했다.
TBSテレビ
그렇게 시나브로 바흐-부조니 샤콘느와 멀어지던 어느 날, 네이버 카페 '피아노 사랑'에서 우연히 한 게시물을 읽었다. 어떤 회원이 일본 잡지를 번역하다가 재미있는 기사를 봤다며 올린 글이었다.
피아노 한번 쳐 본 적 없는 50대 아저씨가 우연히 리스트의 '라 캄파넬라'을 듣고 제대로 취향을 저격당해 9년 동안 이 곡만 죽어라 연습해 공연까지 했다는 사연이었다. 어라? 이런 일이 있네? 흥미를 느껴 관련 정보를 검색하니 한글 자료는 없고 일본어 자료만 나온다. 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구글 번역기의 힘을 빌려) 어렵게 파악한 자초지종은 다음과 같았다.
일본 사가현 사가시에 사는 요시아키 토쿠나가(義昭徳永)씨는 고교 졸업 후 인근 아리아케해에서 수십 년간 김 양식에 종사한 어부다. 하루 24시간이 일(6시간)–휴식(6시간)–일(6시간)–휴식(6시간)의 사이클로 돌아가는 거친 바다 사나이다. 일 년의 절반은 그렇게 고된 일정을 소화하지만, 나머지 절반은 다음 해 김 양식을 준비하는 다소 여유로운 시기가 온다. 이 기간에 그는 유일한 취미인 파친코를 하면서 보냈다.
하지만 너무 빠져든 나머지 2개월 만에 70만 엔(한화로 약 800만원 가량)이나 잃고선 엉겁결에 아내의 지갑에까지 손을 대게 되자, 어느 날 '여기까지 떨어졌는가' 싶어 파친코를 그만두었다. 그렇게 취미가 없어져 그저 멍하니 TV만 보던 2012년의 어느 날이었다. 당시 52세였던 토쿠나가에게 운명처럼 피아노가 다가왔다.
TV에서 피아니스트 후지코 헤밍의 '라 캄파넬라' 연주를 들은 것이다. 엔카를 좋아하고 클래식 음악이라고는 전혀 관심도 없었지만 후지코 헤밍의 따뜻하면서도 연민이 느껴지는 섬세하고 부드러운 연주에 큰 감동을 받았고, 이 곡을 직접 연주하고 싶다는 강한 충동에 휩싸였다.
음대를 졸업하고 피아노 선생님을 하는 아내 치에코에게 '라 캄파넬라'를 치고 싶다고 하니, 돌아온 대답은 "아마추어가 라 캄파넬라를 연주할 방법은 없다. 절대 무리!"였다. 그동안 피아노에 전혀 관심도 없었고 심지어 악보조차 볼 줄 모르는 남편이, 피아노를 배워보겠다는 것도 아니고 뜬금없이 전공생도 버거워하는 라 캄파넬라를 연주하겠다니! 남편의 갑작스러운 변화가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던 것이다.
피아노를 전공한 아내조차 비협조적인 데다가 악보도 볼 줄 모르는 토쿠나가는 궁여지책으로 유튜브에서 '라 캄파넬라' 관련 영상을 검색했다. 마침 라 캄파넬라를 연주할 때 해당 건반 위에 테트리스 게임처럼 막대기가 떨어지는 영상을 발견한 그는, 아내의 피아노를 빌려 일일이 영상을 멈춰가며 막대기와 건반 위치를 확인하고 해당 음을 찾아 누르며 외우기 시작했다.
오른손 연습, 왼손 연습 번갈아 가며 매일 8시간씩, 어떨 때는 너무 열중한 나머지 12시간에 이르기도 했는데, 그렇게 석 달을 꾸준히 연습해 라 캄파넬라 전곡을 외웠다. 52세에 처음으로 피아노 연습에 재미를 느끼게 된 것이다.
이후 꾸준히 연습을 지속하며 실력 향상 과정을 유튜브 동영상으로 올렸는데, 중년 어부의 라 캄파넬라 연주 도전에 감동 받고 용기를 얻은 이들의 응원 댓글이 연이어 달리고 일본 각지의 학교로부터 연주를 듣고 싶다는 초청이 이어졌다.
2020년 1월 13일에는 일본 TBS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해 자신의 삶을 바꾼 피아니스트 후지코 헤밍을 만나 김 양식 어부 일로 단련된 두툼한 손가락으로 직접 라 캄파넬라 연주를 들려주기도 했다. 환갑이 다 된 토쿠나가가 후지코 헤밍을 만나 아이처럼 기뻐하며 연신 눈물을 훔치는 모습이 무척 인상에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