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머랭 선생님
시인의일요일
화자가 어디론가 떠나려고 마음먹었을 때 '낙타'라는 동물을 떠올린 것은 자연스러운 일일 수 있습니다. 낙타라는 동물의 물성보다는 외로움과 고독이라는 삶의 무게를 화자는 응시하고 있었을 테니까요. 그런데요, 그렇게 힘든 길이라면, 힘든 길임이 예상된다면, 처음부터 떠나지 않는 것이 최선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하는데요, 이 질문의 답은 우리가 이미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야만 하는 '삶의 환경' 때문일 것입니다. 삶의 환경은 그악스럽습니다. '사막'이라고 '황량한 대지'라고 말할 정도로 메말라가고 있습니다. 초록이 우거진 환경에 적응하던 동식물들은 모두 사라지고 극악한 환경에 적응한 동식물만 살아남을 정도이죠. 어쩌면 우리는 저 극악한 환경에 살아남은 소수의 생명체일 수도 있겠습니다.
살아남은 '소수의 생명체'로서 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그냥 어쩔 수 없이 살아가며, 버티는 일이 전부이겠습니까. 피할 수 없는 일이기에, 숙명으로 마주하면서 포기해야만 하는 것입니까.
화자는
말합니다. '낙타처럼 저(자신)을 혹으로 당신 또한 혹으로, 그 사이에 짐짝 같은 한 세상 올려놓는다'라고요. 포기하기보다 감내하려고 하는 것이죠. 이겨내려는 것입니다. 또 이렇게도 얘기합니다. '어디쯤이면 끝났다고 / 한 사랑이, 한 사랑을 다했다고 / 울 수 있을까'라고요. 특히 뒤의 문장이 가슴을 울립니다. '한 사랑이, 한 사랑을 다했다는 말' 쉽게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니까요.
궁극적으로는 오아시스에서 멈추듯 편안한 삶을 선택해 살면 좋겠지만, 낙타는 다시 사막이라는 삶속으로 떠나야 합니다. 그렇다면 얼마나 먼 길을 걸어가야만 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낙타로서는 알 수가 없습니다.
그래도 희망이 있는 것은 저 길, 같이 걸어가는 낙타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막을 묵묵히 함께 걸어갈 수 있는 낙타들이 있다면, 저 황량함 속을 걸어가도 그렇게 불행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시 쓰는 주영헌 드림.
김륭 시인은..
경남 진주에서 태어났습니다. 2007년에 <문화일보> 신춘문예에 시, <강원일보> 신춘문예에 동시가 당선되었습니다. 시집 『살구나무에 살구비누 열리고』, 『원숭이의 원숭이』, 『애인에게 줬다가 뺏은 시』, 동시집 『첫사랑은 선생님도 일 학년』, 『앵무새 시집』 등이 있습니다. 지리산 문학상, 동주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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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쓰기'보다 '시 읽기'와, '시 소개'를 더 좋아하는 시인. 2000년 9월 8일 오마이뉴스에 첫 기사를 송고했습니다. 그 힘으로 2009년 시인시각(시)과 2019년 불교문예(문학평론)으로 등단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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