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의 남산몇 개의 길이 보이시나요?
김지원
위 사진을 보자. 몇 개의 길이 보이는가?
직관적으로 눈에 들어오는 길은 두 개일 것이다. 가는 길과 오는 길, 나 역시도 두 개의 길로 인식했다. 그런데 그때, 가운데의 노란색 길로 시각장애인 한 분이 걸어온다. 아 저 길도 길이지. 노란색 점자블록 길을 인지한 순간부터 위 사진은 내게 세 개의 길로 보인다.
우리의 인지는 불완전하다. 무언가를 보면 뇌를 거쳐 정보를 인식하기 때문에 우리가 선입견이나 편견을 가지고 있으면 어떤 대상을 온전히 파악하기 어렵다. 앞의 세 가지 길처럼 우리는 우리가 이용하고, 활동하는 것에 기반해 사물을 인식한다. 두 가지 길로만 다녔던 내게는 가는 길과 오는 길로 보이지만, 시각장애인에게는 한 개의 길 또는 세 개의 길로 인식될 수 있다. 다시 말해 아는 만큼 세상이 보이는 것이다.
점자블록 노란 길을 비로소 길로 인식하게 된 날, 내가 보는 세계가 전부가 아니며 내가 놓치고 있고 제대로 보지 못한 부분들에 대한 여지를 남겨야겠다고 생각했다. 또한 "내가 봤다"는 표면적 사실이 얼마나 깨지기 쉬운 근거인지를 이해하게 되었다.
자아 밖에 외부세계가 실제로 존재한다 하더라도 그것의 실체에는 결코 접근할 수 없다. 당신 앞에 펼쳐진 모든 것은 세계의 진짜 모습이 아니다. 나의 감각기관을 통해 왜곡되고 재구성된 모습일 뿐이다. 나는 세계의 '실체'를 직접 보는 것이 아니라, 나의 감각 기간과 뇌가 그려주는 세계의 '그림자'를 본다. 그런 의미에서 인간은 모두 자폐아다. <우리는 언젠가 만난다> 中
그렇다면 우리가 대중교통이 편리하다고 여기는 이 도시 서울도 누군가에게는 길 없는 고립된 사막일 수 있다. 다수가 이동수단이라고 부르는 것들이 실제 이용 못하는 사람에게는 이동수단이 아니다. 지하철과 버스를 실질적으로 이용할 수 없으면 이동수단의 선택지가 될 수 없다. 이런 경우 사람으로서 기본적으로 누려야 할 이동권이 저해되고 쉽게 고립된다.
세상의 무게중심이 점점 온라인으로 이동하고 있지만 아직은 오프라인이 기준인 세상에서, 이동권이 보장되지 않으면 교육권과 노동권도 행사하기 어렵다. 그래서 이동권의 박탈은 생존과 관련한 다른 권리들을 침해해 기본적인 삶마저 영위하기 어렵게 만든다. 평소 당연하게 주어져 느끼지 못하지만 이동권의 보장은 생존과 연결된 중요한 문제다.
장애인 이동권 보장, 올해만 여덟 번째 시위
지난 20일 바쁜 월요일 출근길, 지하철역에서 장애인 인권 단체의 시위가 있었다. 장애인의 이동권을 보장해달라는 시위였다. 장애인도 비장애인과 같이 일상을 영위할 권리가 있지만 우리나라 대중교통 인프라는 장애인에게 비친화적이기 때문에 이를 개선해달라는 것이었다.
구체적인 내용을 보면, 전국 시내버스 10대 중 7~8대는 장애인이 탈 수 없는 계단 버스로, 저상버스를 확대해달라는 것과 서울 지하철에 엘리베이터를 모두 설치해달라는 것이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2022년까지 지하철에 엘리베이터를 100% 설치한다는 약속을 했지만, 내년 서울시 예산에서 이 항목이 빠져있고 현재 22개 지하철 역에는 엘리베이터가 없는 상황. 장애인 콜택시의 경우도 중증장애인 150명당 1대 수준이 안 되기 때문에 장애인 이동 서비스가 현저히 부족한 실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