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두마을 당산제 오두마을 주민들이 당산제에 참여하고 있다.
한대윤
무엇보다도 마을 분들이 "그때 가면 다 하게 돼 있어" 정신으로 적극 동참해 주셨기 때문이다. 축산업을 하시는 주민 분은 돼지머리와 편육을 준비해주셨고 집에 과일이 있으신 분은 과일을, 편의점 하시는 분은 그릇을, 걱정하던 지푸라기도 쌀농사 하는 집에서 가져와 주셨다. 삼삼오오 모여 당산제를 준비하니 풍성한 자리가 되었다.
모든 식순을 큐시트에 적어놓고 준비물, 역할 분담만 생각했던 나였기에 예상치 못한 결과였다.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었던 물품 준비부터 주변 청소에 상차림과 본 행사 진행 후 뒷마무리까지, 누가 말할 것 없이 차근차근 물 흐르듯 이어졌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15분 정도 모이실 거라 예상하고 경품을 20개 정도 준비했는데, 그게 모자랐던 거였다.
경품을 한 분도 빠짐 없이 나눠드리려고 넉넉히 준비했는데 20분이 훌쩍 넘게 오셔서 당황했다. 그도 그럴 것이 마을 행사에 이만한 인원이 한 번에 모이는 건 나로선 처음 겪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돌발적인 상황도 아짐들께서 척척 해결해 주셨다.
경품 중엔 샴푸, 로션 등의 묶음이 있어 아짐들께서 즉석에서 꾸러미를 제작해 주셨다. 제사에 쓰인 시루떡과 샴푸 한 줌, 로션 한 줌을 봉투에 담아 모두가 하나씩 꾸러미를 가져가도록 만들어 주셨다.
당산제 준비를 위해 발품 팔던 모습을 좋게 봐주셨는지, 기금도 예년에 2배에 달하는 돈이 모였다. 마을 돈 한 푼 없고 빚만 안고 시작했던 터라 연초에 모아주신 기금 덕분에 손가락만 빠는 신세를 벗어날 수 있었다.
마을에 최소한의 자금이 있어야 할 수 있는 사업들도 당산제 이후엔 맘 편히 신청 할 수 있었다. 당산제가 내 머릿속 구상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오히려 지금 결과가 생각보다 더 잘 됐다고 느꼈다.
이장이 잘하면 된다? 내가 착각했던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