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제일교회
박상준
사람은 언제 어디서 누구와 만나고 어떤 영향을 받느냐에 따라 일생의 목표와 방향이 정해지거나 달라지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박동완은 배재학당에서 '민족주의계열 기독교인들'을 만났다. 하나같이 향후 민족운동과 독립운동에 크게 기여한 분들이다.
박동완은 배재학당 시절, 정동제일교회에 나가면서 현순 목사와 손정도 목사, 이필주 목사를 만났다. 이들은 1910년대 정동제일교회를 이끌었다. 뒤에 자세히 소개하겠지만, 이필주 목사와 기미년 독립선언에 서명하고 함께 옥고를 치뤘다. 현순ㆍ손정도 목사는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요인이 되었고 이후 박동완은 은밀히 관계를 유지하였다.
정동제일교회와 배재학당에서 박동완에게 영향을 준 목회자는 존스(1867-1919) 장로 목사, 최병헌(1858-1927) 제2대 담임목사(1903년 5월 -1914년 6월 시무), 현순(1879-1968) 제3대 담임목사(1914년 6월-1915년 3월 시무), 손정도(1882-1931) 제4대 담임목사(1915년 4월-1918년 5월 시무). 이필주(1869-1942) 제5대 담임목사(1918년 6월-1919년 2월 시무)를 들 수 있다.
서울에 조선통감부를 설치한 일제는 1909년 2월 출판법을 공포하여 사전검열로 배일 출판물을 압수하고, 7월 기유각서를 통해 사법권을 강탈한데 이어 9월부터 일본군의 대대적인 의병학살작전을 벌였다. 10월 하얼빈에서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했다. 운명의 해 1910년 6월, 일제는 한국경찰권을 박탈하면서 일본 헌병이 한국치안을 장악하고, 8월 29일 병탄조약으로 대한제국은 일제의 식민지로 전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