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7일 치러진 재보궐선거 당시 KBS 개표방송 갈무리
KBS
하나의 유령이 대한민국을 떠돌고 있다, 이대남(20대 남성)이라는 유령이. 산업화 세대와 민주화 세대, 진보와 보수 모두 이 유령을 사냥하거나 이용하려 한다. 누군가는 이대남을 '여성 혐오자'라고 하고 누군가는 '정치적 선동'일 뿐이라고 한다. 또 다른 누군가는 단지 '백래시'(반발)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대남은 선거를 통해 실존을 알렸다. 지난 4월 7일 재보궐선거에서 이들은 오세훈 서울시장 후보에 72.5%의 지지를 보냈다. 60대 이상 여성 다음으로 압도적 지지를 보낸 단일 연령·성별 집단이었다. 오세훈 후보가 이대남의 학생 시절 '급식을 빼앗는다'고 여겨지던 것을 생각하면 놀라운 일이었다.
이대남의 물결은 제1야당의 당대표 선거에도 들이쳤다. 그들은 30대의 '공정' 이데올로기를 가진, 페미니스트들이 '안티 페미니스트'라 부르는 후보에 열광적 지지를 보냈고 기성세대가 힘을 보탰다. 그렇게 이준석은 당대표가 되었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이대남도 함께 촛불을 들고 '꼰대', '적폐' 정당이라 욕했던 그런 당의 후보였기에 더욱 놀라운 일이었다.
이대남은 이제 유령이 아니다. 한국 사회의 상수이자 하나의 세력이다. 그렇다면 이대남은 누구인가. <시사인> 기사 "[20대 여자 현상] '약자는 아니지만 우리는 차별받고 있다'"에 따르면 '한국사회에서 남성이 사회적으로 차별받고 있다'는 질문에 58.6%의 20대 남성이 동의했다(20대 여성은 18.4%가 동의했다).
58.6%. 이들은 페미니즘을 거부한다. 남성이 차별받고 있는데 여성의 권익을 신장시킬 이유가 있냐는 것이다. 이념을 가리지 않고 '반 페미니즘' 깃발 아래 모인 20대 남성, 이들이 이대남이다. 그리고 그 선두에 깃발을 흔들고 있는 이가 이준석 대표다.
이대남은 왜 '남성은 차별받고 있다'고 생각할까? 수많은 이유 가운데 '국방의 의무'가 이대남의 정체성을 포괄하는 이슈일 것이다. '20대 남성'의 피부에 가장 와닿는 문제이니까. 20대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공정' 이데올로기가 작동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군대 이야기를 따라가는 것이 '왜 이대남은 이준석에 열광하는가?'에 답이 될 수 있는 까닭이 여기 있다.
[이대남의 의문 ①] 왜 '지금도' 남자만 국방의 의무를 지나요?
이대남의 아버지들이 20대이던 시절에 그들은 한 가정의 '가장'이었다. 민법에서는 남성에게 가족에 대한 책임과 권리를 독점케 하는 '호주제'가 있었다. 이 시절에 아버지들은 한 가족을 대표해 국방의 의무를 졌다. 내 아내를 위해 혹은 미래의 아내가 될 사람을 위해, 미래의 아이들을 위해, 그리고 그 아이들이 살아갈 공동체를 위해서 기꺼이 의무를 이행했다.
호주제가 폐지된 지 16년이 지났다. 아버지들과 이대남이 마주한 상황은 확연히 다르다. 대한민국의 가부장제는 붕괴했다. 당연히 결혼해야 하고 아들을 낳아야 한다는 풍조는 찾아보기 어렵다. 이제는 되려 비혼·비출산 열풍이다.
당연히 이대남의 국방의 의무에 대한 생각도 아버지들과 달라졌다. 내가 결혼을 할지도 모르고, 자식이 있을지도 모르는데 왜 국방의 의무를 독박 써야 하냐는 것이다. 과거에 남자만 국방의 의무를 지는 것이 합당했을지라도 지금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대남의 의문 ②] 왜 '신체적 차이'로 남성만 군대를 가야 하나요?
한때는 '신체적 한계'나 '임신·출산'을 이유로 남성만 군대를 가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이대남들은 이미 신체적 한계에 구애받지 않고 국방의 의무를 질 수 있는 방식이 있다고 말한다.
요컨대 체력·근력을 요하지 않는 보직들이 그것이다. 정신·신체적 장애를 가진 남성들이 국방의 의무를 지는 방식인 '사회 복무 요원'을 참고할 수도 있다. 혹은 총을 들지 않는 다양한 대체 복무 제도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이대남은 신체적 차이로 군대를 남성만 지는 것은 남성우월주의 사상이라 비판한다. 여성들을 '지켜줘야 할' 수동적 존재로 보는 편견이자 차별이라는 것이다. 이미 군대에서 부사관으로 근무하고 있는 1만 3천 명의 여성들을 보며 이들이 말한다. '봐라, 여자도 할 수 있지 않느냐'고 말이다.
[이대남의 의문 ③] 왜 다가오지 않은 임금격차로 남성만 군대를 가야 하나요?
일부 페미니스트들은 '성별 임금 격차'로 군대 이슈에 접근하기도 한다. 남자가 여자보다 더 많은 소득을 얻기에 국방의 의무를 지는 것이 당연하다는 주장이다.
분명 한국 여성은 같은 직종·같은 근속 년수에도 더 적은 돈을 받는다. 직업 선택에 제약을 받거나 경력 단절도 쉽다. 이런 불합리한 사실에 대해서는 논쟁의 여지없이 다수의 이대남도 동의한다. 다만 이들이 주목하는 것은 '지금 20대의 임금격차'다.
이대남은 평균적으로 남성들이 높은 임금을 받는다고 해서 20대도 그런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20대 공무원·교육 직종에서는 여성의 소득이 남성보다 3.3% 높다는 연구도 있다(김창환·오병돈, 경력단절 이전 여성은 차별받지 않는가?, 한국사회학회, 2019). 이대남이 보기에 최저임금도 못 받는 남성 군인을 포함하면 20대 남성은 또래 여성의 소득에 한참 못 미친다.
경력 단절 이후 나타나는 임금 격차는 어떨까. 이대남은 지금의 20대가 30~40대가 된 미래는 다를 것이라 말한다. 어제도 비가 내렸다고 내일도 비가 반드시 내릴 거라는 보장이 없지 않은가.
이미 고정 성별 역할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바뀌고 있고, 여성에 비율을 보장하는 할당제 등이 있다. 내년부터는 남녀고용평등법이 시행된다. 이런 제도들로 이대남은 20대에 이어 30~40대에도 여성보다 낮은 소득을 올리게 되지는 않을까 생각하기도 한다. 이들은 다가올지 확실하지도 않은 임금 격차로 남성만 군대를 가는 것이 불합리하다고 생각한다.
진정으로 '양성 평등' 바라는 이대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