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 라이더배달 플랫폼이 급증함에 따라 배달 노동자 또한 급증하는 추세에 있다.
셔터스톡
수년 전만 해도 '배달대행'을 직업이라 생각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창업도 매우 쉬워 임대보증금과 임대료가 싼 후미진 골목 상가에 컴퓨터 한두 대와 오토바이를 탈 줄 아는 청년 몇 명만 모으면 할 수 있는 사업이었다.
그러니 어떠했을까? 한마디로 '엉망'이었다. 실례로 과거 필자가 피자 가맹점을 운영하던 시절, 어느 날 손님으로부터 '배달대행'으로 보낸 피자가 오뉴월 삼복더위에 다 식어서 왔다는 항의를 받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때만 해도 '단건 배달'은 언감생심, 배달 기사들이 시간 절약을 위해 여러 가게의 음식을 한 번에 (심할 때는 10건을 한 번에 배달하기도 한다) 일괄 배달하려 하다 보니 피자가 손님 집에 도착하기까지 1시간이 넘게 걸린 것이다.
이러다 보니 일부 음식점 사장은 배달대행 기사가 도착하면 배달통의 뚜껑을 열어보고 이미 다른 배달 음식이 들어 있으면 자신의 음식부터 배달해 달라고 부탁하거나, 성격이 고약한 사장의 경우는 기사를 윽박지르기도 했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배달대행'을 직업이라 생각하지 않는 일부 기사들도 있었다. 이들에게 '직업정신'이 있을 리 없었다. 음식을 넣는 '배달통' 안은 쓰레기통을 방불케 했고, 손님에 대한 친절은 기대도 할 수 없었다. 음식도 마구 다루어 음식의 국물이 흘러나오거나 피자나 초밥같이 형태가 훼손되기 쉬운 음식은 엉망이 된 채로 배달되기 일쑤였다. 그래서 당시에는 음식점이 '배달대행'을 쓰면 6개월 안에 망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그런데 이 시장에서 가능성을 본 '스타트업' 기업들이 전국에 난립한 배달대행을 자신들의 브랜드에 묶어 프랜차이즈 기업과 연결하는 플랫폼 기업을 설립했다. '부릉, 바로고' 등이 그 대표적 기업이다. 덕분에 그동안 배달대행을 꺼렸던 유명 외식 브랜드들도 이용하기 시작했고, 동네 배달대행도 생존을 위해 나름 체계를 갖추기 시작했다. 그 결과, 이제는 그럴듯한 사업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플랫폼이 촉발한 무한경쟁
그런데 이 시장에 '쿠팡이츠'가 '단건 배달'을 무기로 등장했다. 당시 관련 업계 종사자들은 다들 반신반의했다. 음식점 사장들에게 '단건 배달'은 매우 유혹적인 조건이었지만, 현실화하려면 배달 기사의 손에 쥐어지는 배달비가 적어도 건당 5000원 이상은 돼야 한다는 것이 중론이었기 때문이다.
'단건 배달'은 배달 음식점에서도 여전히 '숙원'이었다. 기업형 배달대행이 등장해도 '묶음 배달'의 문제는 여전히 해소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한 건 배달비가 평균 3000원인데 단건 배달의 경우 교통량이 많은 도시에서는 '도로의 무법자'가 돼도 1시간에 2, 3개 배달도 버겁기 때문이다.
더욱이 그 배달비를 기사가 다 가져가는 것도 아니었다. 일명 '콜값'이라고 해서 대행 사무실에 200원에서 500원(이것도 체계가 있다) 정도를 내야 한다. 거기에 기름값, 그리고 자가 오토바이가 없는 사람은 리스비(월 40~50만 원)를 내야 한다. 또, 자가 오토바이가 있더라도 각종 유지비에 엄청난 보험료까지 더하면 '단건' 배달로는 수지 타산을 맞출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게 실현되었다. 자본주의 만능열쇠인 막대한 '자본'의 힘으로 말이다. 얼마 전 영등포에 있는 지인의 가게에 방문했을 때 일화가 단적인 예일 것이다. 당시 고급 차량인 제네OO가 가게 앞에 멈추더니 운전자가 가게로 들어왔다. 난 당연히 손님으로 생각하고 바쁜 주인장 대신 '어서 오세요'라고 인사했는데, 그 운전자는 '쿠팡입니다'라고 말했다.
'배민커넥트' 또는 '쿠팡이츠' 등으로 단건배달 부업을 하는 이들이었다. 사장은 이 상황이 익숙한 듯 바리바리 음식을 포장해서 그의 손에 쥐여 주었고 그는 승차 후 유유히 사라졌다. 이후 황당해 하는(?) 하는 내 모습에 지인은 지난번에는 '포O쉐'도 왔다며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