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양남엔 주상절리를 배경으로 해변 산책로가 조성돼 있다.
경북매일 자료사진
주상(柱狀)은 기둥의 형상, 절리(節理)는 암석에서 볼 수 있는 나란한 결, 또는 갈라진 틈을 의미한다. 그러니 주상절리란 나란한 결로 갈라진 기둥 형태의 바위라고 보면 될 듯하다.
여행자가 걸어 다닐 수 있는 길에서 바로 내려다보이는 양남의 주상절리는 제주도 중문의 주상절리와는 또 다른 매력을 뽐낸다.
몇 해 전. 비행기를 타고 가서 본 제주의 주상절리는 바다와 대립된 수직의 자세로 우뚝 서서 밀려오는 파도를 꺾으며, 하얀 포말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웅장하고 거대한 모습이었다.
반면 경주의 주상절리는 파란 물결과 하나가 되려는 듯 바다를 향해 발을 뻗고 있는 수평의 형태다. 제주의 그것에 비해 작은 규모지만 온화하고 따스하게 느껴졌다.
자연이 펼치는 마술은 인간이 흉내 낼 수 없는 영역이다. 자연과학적으로 설명하자면 주상절리란 화산 활동으로 인해 생긴 것이겠지만, 양남 바닷가에서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만난 주상절리는 자연이란 마법사가 사람들의 감탄을 불러내기 위해 만들어놓은 '기묘한 예술품'으로 다가왔다.
양남 주상절리가 형성된 시기는 지금으로부터 2600만 년 전으로 추정된다. 감히 상상하기도 어려운 까마득한 시간의 저편. 지금 보고 있는 풍경을 1500년 전 신라인들도 봤다고 생각하니 물리학자들이 말하는 '시간의 연속성'이 실감으로 전해진다.
제대로 된 교통편이 없었던 옛날. 서라벌의 소년들은 무리 지어 모험을 떠나듯 발걸음을 재촉해 동남쪽 양남 바닷가로 찾아왔을 것이다.
그리고, 그중 하나는 주상절리 끝자락에서 몸을 던져 함께 온 친구들에게 수영 실력을 과시하지 않았을까? 변변한 수영복도 없이. 한없이 평화로운 해변 풍광 속에서 접혀 있던 상상력의 날개를 펴게 하는 짙푸른 경주의 바다. 너무나 아름다워 혼자 즐기기엔 아까웠다.
신경림의 시를 떠올리게 하는 파도소리길
'일상'이라는 이름의 감옥 속에 갇혀 있던 현대인들에게 돌아가고픈 원시의 풍경을 선물하는 경주의 바다. 여기까지 왔으니 1시간쯤 할애해 잘 정돈된 해변 산책로를 걸어보지 않을 이유가 없지 않을까?
양남엔 괜찮은 음식점과 근사한 카페가 적지 않다. 가볍게 요기부터 한 후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들고 '파도소리길'에 들어섰다. 누구의 작명인지 몰라도 산책로 이름을 기막히게 잘 지었다. 초입에서부터 가슴이 탁 트이는 파도 소리가 여행자를 반긴다.
들머리에 1.7km 가량 이어지는 파도소리길에 대한 친절한 설명이 안내판에 적혀 있다.
"양남 주상절리를 곁에 두고 거닐 수 있도록 읍천항에서 하서항에 이르는 해안 산책로 '주상절리 파도소리길'이 조성됐다. 데크로드, 정자, 벤치, 구름다리 등이 잘 정비돼 있고, 중간엔 주상절리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도 있으니 꼭 찾아보시길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