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이는 내가 서재에서 일을 할 때면 이런 표정으로 지긋이 나를 바라보며 곁에 있어준다.
송주연
"제가 집에서 글도 쓰고 일을 해야 할 때가 많은데 혹시 방해를 하지는 않나요?"
2015년 6월 18일, 그러니까 반려견 은이를 입양하기 하루 전 날. 내가 은이의 임시보호자에게 물었던 질문이다. 입양을 결정한 후에도 나는 걱정을 내려놓지 못하고 있었다.
한창 손이 많이 가던 초등학교 1학년 아이를 돌보면서 대학원에 다니고 있던 당시 나는 늘 혼자만의 시간이 절실했다. 아이가 학교에 있는 반나절 동안 나는 집을 정리하고, 대학원 과제를 하고, 책을 읽고 원고를 써야 했다.
나만의 이 소중한 시간과 공간에 또 다른 존재가 함께 하는 것을 허용하기 싫었다. 게다가 대부분의 돌봄 노동이 내 책임이 되고 마는 현실 속에서 나는 또 다른 돌봄 대상이 추가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때문에 입양을 앞두고 남편과 아이는 설렘과 기쁨으로 들떠 있었지만, 나는 참 오래 망설였다.
그때 나는 개들은 스스로를 돌볼 수 없을 거라 생각했다. 먹고, 자고, 싸는 것, 더위와 추위를 피하는 모든 것을 인간이 해줘야 하는 그런 존재라 여겼다. 이 의존적인 생명체를 완전히 다른 종인 내가 책임져야 한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부담스러웠다.
그럼에도 임시보호 가정을 방문했을 때 우리 식구들을 반기던 은이의 경쾌한 몸짓과 맑게 빛나던 까만 눈동자를 잊을 수 없었다. 남편과 아이의 간절한 입양 의사도 내 마음을 흔들었다. 그렇게 복잡한 마음으로 나는 2015년 6월 19일 은이와 동거를 시작했다.
발견하는 마음
첫 날 밤은 예상대로였다. 은이는 혼자 잠을 잘 수도 없는 '아기'였다. 은이의 거처를 거실에 마련해주고 침실에 들어가자 은이는 낑낑대기 시작했다. 나는 도저히 그 소리를 무시할 수가 없었고, 은이를 방에 데리고 와 침대 아래에 잠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그래도 은이는 계속해서 낑낑댔다. 나는 은이가 안쓰러우면서도 한숨이 절로 나왔다. '이제 잠도 편하게 못 자는 것인가.'
결국 나는 은이를 안아 침대에 올렸다. 은이는 내 옆구리로 파고들더니 이내 쌔근쌔근 잠이 들었다. 날이 더워지는 시점이었지만, 내 옆구리를 간질이는 생명체의 온기가 참 좋았다. 처음 아들을 안았을 때 같은 뭉클함이 느껴지기도 했다. 살짝 눈물이 고인 채로 잠이 들었던 것 같다. 아마 이때 나는 이미 은이에게 무장해제 돼 버렸던 것 같다.
그렇게 시작된 은이와의 일상은 발견의 시간들이었다. 다음 날 우리는 배변 훈련에 돌입했다. 유투브도 찾아보고 책도 한 권 사서 훈련법을 익혀둔 차였다. 그런데 우리가 무엇을 하기도 전에 은이는 배변패드에 바로 소변을 보는데 성공했다. 배변패드 위치를 바꿔도 거짓말처럼 찾아내 명중시켰다. 첫 산책도 순조로웠다. 하네스를 보면 몸을 내밀었고, 걸음이 빠르긴 했지만 나를 크게 앞서가진 않았다. 작은 발로 어쩜 그리 잘 걷는지 감탄이 절로 나왔다.
게다가 분리불안도 없었다. 식구들이 모두 외출을 할 땐 꼬리를 내리고 얼굴 가득 실망스런 표정을 짓긴 했지만, 외출 후 '독 카메라'로 살펴 본 은이는 크게 동요하지 않는 듯 보였다. 창 밖을 내다보며 경계를 하기도 하고, 자신의 공간에서 잠을 청하기도 하면서 나름 혼자만의 시간을 즐겼다.
나는 당시 추정 나이 3살이었던 은이가 할 수 있는 게 이토록 많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3살의 사람 아기보다 배변 실수도 적었고, 몸에 뭔가가 묻으면 혀로 핥아 닦기도 했고 추위와 더위를 피할 줄도 알았다. 은이는 스스로를 돌볼 줄 알았다.
감사하는 마음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서 은이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나의 시간과 공간 속으로 들어왔다. 아침에 눈을 뜨면 은이도 내 옆에서 기지개를 펴고 일어나 함께 서재로 간다. 내가 책상에 앉아 원고를 쓰는 동안 은이는 서재의 작은 소파나 책상 밑에서 나머지 아침 잠을 잔다(지금도 그러고 있다).
식사를 준비할 때면 주방을 서성이고, 청소를 할 때면 소파나 침대 위에 올라가 청소기가 지나갈 수 있게 피해준다. 내가 일터에 가야 할 때면 아쉬운 눈빛으로 인사를 건넨다. 그리고 돌아오면 그 동안의 일들을 다 말해주기나 하는 듯 한참을 들떠서 온 집안을 뛰어다니며 반겨준다.
은이와 함께 하는 이런 일상은 원래 그랬던 것처럼 자연스럽다. 분명 나와 너무나 다른 생명체가 늘 내 곁에 있는데 마치 아무도 없는 것처럼 편안하다. 나는 은이 앞에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옷을 갈아 입을 수 있고, 전화 통화를 할 때도 어떤 말도 가려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은이가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는 건 아니다. 내가 감정적으로 힘들 때면 어김없이 그 마음을 읽어내고 다가와 살을 부비고 핥아주며 내게 위로를 건넨다. 은이 역시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드러내고 때로는 주장을 펼치기도 한다. 함께 놀고 싶을 땐 장난감을 물어 오고, 사람의 손길을 원할 땐 다가와 내 손을 툭 치며 쓰다듬어 달라고 요구한다.
은이가 미용을 위해 2시간 정도 집을 비울 때면, 마치 집이 텅 빈 것처럼 느껴진다. 은이는 함께 있을 땐 '아무도 없는 듯' 편안하지만, 막상 안보이면 그 자리가 너무나 크게 느껴지는 엄청난 존재감을 지녔다.
한없이 편안한 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