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동작을 이용해 셀카를 찍는 기능스마트폰을 정말로 스마트하게 이용하는 80세 김현수 어르신. 이런 기능이 있는줄 그날 알았다.
오창경
행사가 시작되자 어르신들은 자리에 앉았고 행사 관계자들은 조용히 움직이며 원활한 행사를 도왔다. 객석의 중간쯤에서 어르신 한 분이 일어서더니 스마트폰으로 행사장 안의 풍경을 쓱 훑으며 동영상을 찍었다. 자리에 앉아서는 스마트폰 화면을 보며 손을 흔드는 동작을 하는 모습도 보였다(나중에 알고 보니 모션으로 셀카를 찍는 동작이었다).
연세가 지긋한 어르신이 스마트 폰으로 동영상을 찍는 모습이 이채로웠다. 내가 아는 어르신들은 아직도 폴더폰을 사용하고 스마트폰을 대부분 전화를 걸고 받는 용도로 밖에 사용할 줄 모르는 분이었기 때문이다.
식전 행사로 홍산 풍물팀의 충청 웃다리 사물놀이 공연이 시작되었다. 그 어르신은 사물놀이 공연을 하는 무대 앞으로 나아가더니 한참을 동영상을 찍었다. 기로연에 참석한 어르신들 중 아무도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는 분은 없었다.
그 어르신은 스마트폰을 정말 스마트하게 이용할 줄 아는 분이었다. 기로연에 대해 취재하러 왔다가 스마트폰을 자유롭게 사용하는 그 어르신한테 꽂혔다. 사물놀이 공연이 끝나고 다음 행사가 시작될 즈음에 그 어르신이 자리에서 일어나 행사장 밖으로 나가길래 따라가서 말을 건넸다.
"스마트폰으로 동영상을 찍으시던데.....?"
"내가 운영하는 카페가 6개에 밴드가 3개야. 거기에 다 올려주려면 그 정도는 찍어야지."
나는 잠시 할 말을 잃었다. 그 연세에 '밴드'와 '카페'를 알고 있는 스마트한 어르신을 시골 마을에서 만나게 될 줄이야.
"부천시 충청향우회장도 오래하고 산악회 활동도 했거든. 고향에 내려와 있으니 고향 소식을 향우회와 종친회 카페에 올려주는 거지. 나가 있는 사람들이 고향을 소식을 반가워 하니까 이런 행사장에는 다 쫓아다니며 동영상을 찍어서 올리고 있어."
올해 80세인 김현수님은 2년 전 고향인 부여군 홍산면 조현리로 돌아와 유유자적한 삶을 즐기고 있다고 했다.
"내가 셀카봉도 세 개나 있는데 오늘은 안 가져왔어. 내가 그런 거 가지고 다니니까 여기서는 미친놈 소리도 들어. 나는 폰도 자주 바꿔. 새로운 폰이 나오면 바꾸고 용량이 다 차면 바꿔버리는 거야."
나이 80세 얼리어답터 어르신이었다. 스마트폰을 얼마나 스마트하게 이용을 하는지 필요한 앱을 다운 받아서 살뜰하게 사용하고 있다며 나한데 바탕화면에 깔린 앱들을 보여주었다.
한자 어플도 3개를 깔아놓고 수시로 모르는 한자를 찾아보며 익히며 사용하고 있다고 했다. 현재 위치 정보를 찾는 법과 보내는 법 등을 나에게 알려주기도 했다. 항상 이용하는 기능들 이외에는 알려고 하지 않던 나의 스마트폰 사용법에 경종을 울려주기까지 했다. 스마트폰 사용법을 젊은이가 아닌 올해 80세인 어르신에게 배우는 기분이 어쩐지 나쁘지 않았다.
"자꾸 주무르면 보이는 거야."
얼핏 야한 상상이 드는 말이었지만 80세 얼리어답터 어르신한테는 가장 어울리는 말이었다. 내가 뒷자리에서 지켜본 김현수님은 행사가 진행되는 동안 한시도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다른 어르신들이 전화기를 애초에 가져오지도 않은 것처럼 얌전히 행사에 집중하는 동안 그의 손은 한순간도 스마트 폰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나이가 들수록 기기의 발달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소외감을 느낀다. 그럼에도 적극적으로 속도를 따라잡으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 것이 노년의 특성이다. 사람은 항상성을 유지하려는 본능이 있다. 항상 그 자리에 머무르려는 욕구와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더 크다. 나이가 들수록 더 그렇게 된다.
김현수님은 젊은 시절 냉동 냉장기를 다루는 일을 했다. 그래서 기계에 대한 두려움 대신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이 더 컸다. 스마트폰을 자유자재로 다룬 데는 이런 배경이 있었다. 국민학교를 다 졸업하지 못하고 서울로 올라가서 자리를 잡기까지 노숙을 하며 공부를 하고 자립을 하는 등 치열하게 살았다고 했다.
젊은 날 불꽃처럼 살았던 습관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했다. 고향에 돌아와서는 동네에서 고장 난 가전 제품 등은 다 손봐주는 기술자로 재능 기부를 하며 살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