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국립대학교는 12월 9일 오후 5시 가좌캠퍼스 GNU컨벤션센터 3층 다목적홀에서 ‘남성문화재단 재산 수증증서 전달식’을 개최했다.
경상국립대학교
"돈을 모아 두면 똥이 된다"며 오랫동안 장학금과 문화예술, 환경운동, 지역언론 등에 지원해온 김장하(78) 남성(南星)문화재단 이사장이 재단을 해산하면서 기금 전액을 경상국립대학교에 기탁했다.
경상국립대는 9일 늦은 오후 가좌캠퍼스 컨벤션센터 다목적홀에서 '남성문화재단 재산 수증증서 전달식'을 열었다.
2000년 설립된 남성문화재단은 그동안 지역사회의 교육과 문화 발전에 기여해 왔고, 지역문화 도서 발간 사업, 장학사업, '진주가을문예' 지원사업 등 진주를 비롯한 지역의 문화 진흥에 힘써 왔다.
재단은 지난 9월 6일 이사회를 열어 해산을 결의했다. 재단은 기본재산 현금 6억 5000만 원과 '서경방송' 발행 주식 2만 주(평가액 28억여 원)를 경상국립대 발전기금재단에 지정 기탁했다. 합치면 34억 5000만원 정도다.
이 기금은 '진주학'을 비롯한 경남지역 학술연구, 지역사회와 공동으로 문화진흥사업을 추진하는 데 사용된다.
김 이사장은 재단 설립에 앞서 1995년부터 옛 <진주신문>이 운영하던 '진주신문가을문예'의 운영 기금을 지원해 오기도 했다. '진주가을문예운영위원회'는 전국에 걸쳐 시·소설 공모를 통해 매년 1500만원의 고료를 수여해 왔고, 지난 12월 4일 마지막 시상식을 열기도 했다. 진주(신문)가을문예는 재단 해산에 따라 올해로 27회로 종료되었다.
1944년 경남 사천에서 태어난 김장하 이사장은 1962년 한약종상(한약업사) 자격을 획득했고, 사천에서 한약방을 하다가 10년 뒤 진주로 이전해 해오고 있다.
김 이사장은 2008년 10월에는 경상국립대에서 '명예문학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1984년 학교법인 '남성학숙'을 설립해 명신고등학교를 개교했고, 1991년 국가에 기부헌납(당시 100억원 규모)해 공립으로 전환하도록 했다.
1991년 명신고 이사장 퇴임사 때 그는 "내가 배우지 못했던 원인이 오직 가난이었다면, 그 억울함을 다른 나의 후배들이 가져가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했다.
이어 "한약업에 종사하면서, 내가 돈을 번다면 그것은 세상의 병든 이들, 곧 누구보다도 불행한 사람들에게서 거둔 이윤이겠기에, 그것은 내 자신을 위해 쓰여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김 이사장은 "본질적으로 학교는 개인의 것일 수 없다"며 "학교 설립의 모든 재원이 세상의 아픈 이들에게서 나온 이상, 이것은 당연히 공공의 것이 되어야 마땅하다. 학교가 공공의 것이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이 바로 공립화이고, 그것이 국가 헌납"이라 말하기도 했다.
그는 1990년 시민주로 창간한 옛 <진주신문> 주주 겸 이사로 활동했고, 1992년에는 형평운동기념사업회 결성을 주도하여 2004년까지 회장을 역임했다.
김 이사장은 환경운동을 비롯한 시민운동을 지원하기도 했고, 진주지역 학생들한테 장학금을 지원하기도 했다.
그는 경상국립대 발전후원회장, 경상국립대 남명학관 건립추진위원장, 진주문화사랑모임 부회장, 지리산생명연대 공동대표, 진주오광대보존회 후원회장, 지리산살리기국민행동 영남대표, 진주환경운동연합 고문, 진주문화연구소 이사 등을 지냈으며, 1992년 4월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았다.
김장하 이사장은 평소 "똥은 쌓아두면 구린내가 나지만 흩어버리면 거름이 되어 꽃도 피우고 열매도 맺는다"며 "돈도 이와 같아서 주변에 나누어야 사회에 꽃이 핀다"는 생각에 여러 시민사회에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