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룡사 역사문화관에 전시된 신라의 유물들.
경북매일 자료사진
오래된 절터에서 떠올린 시 한 편
형상은 사라져도 기억은 남는다. 역사적 상상력이 그 기억의 복원에 힘을 더해준다. 황룡사는 1400년 전에 만들어져, 까마득한 옛날인 고려 시대 때 사라진 사찰이다. 생존한 누구도 본 적이 없다.
그렇다 해도 한 민족의 기억 속에서 자부심까지 온전히 사라지게 만들 수는 없는 법. 황룡사 발굴 작업은 상상력 저편 기억으로 남은 서라벌의 역사를 복원하는 행위다. 그래서 의미가 작지 않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1976년부터 8년간 황룡사지 일대 80928㎡의 땅에서 발굴 조사를 벌였다. 사찰 배치의 전모를 밝히고, 발굴된 자료를 토대로 절터를 정비·보존해 역사 교육에 활용하기 위해서였다.
이 작업을 통해 수만 점의 유물이 세상에 드러났고, 황룡사 구조와 내부 건물의 배치가 많은 부분 확인됐다. 출토된 연화하대석, 간주석, 초석 등은 현장에 전시돼 그곳을 찾는 사람들과 반갑게 만나고 있다.
그리고 오늘. 완전한 형태의 황룡사와 구층 목탑을 볼 수는 없지만, 학자들의 노력이 '상상 속의 7세기 신라'를 보다 뚜렷하게 만들어주고 있다는 건 분명하다.
절터를 느린 걸음으로 돌아보며 그 옛날 황룡사를 찾았을 진흥왕과 선덕여왕의 모습을 상상했다. 그때 떠오른 시 한 편이 있었으니 서정주(1915~2000)의 '선운사 동구'. 이런 노래다.
선운사 고랑으로
선운사 동백꽃을 보러 갔더니
동백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않았고
막걸릿집 여자의 육자배기 가락에
작년 것만 오히려 남았습디다
그것도 목이 쉬어 남았습디다.
동백꽃을 보러 고향 가까운 절을 찾아간 시인. 정작 보고자 했던 꽃은 보지 못하고 주모의 속된 노래만 듣고 돌아와야 할 난처한 형편이다. 그러나, 이 시에선 실망보다는 낭만이 더 크게 일렁이고 있는 게 보인다.
'동백꽃'으로 상징되는 성(聖)과 '육자배기'로 표현된 속(俗)이 결국은 멀리 있지 않다는 문학적 깨달음이 작가에게서 독자에게로 자연스레 전달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