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전쟁과 사랑>의 창작 계기가 된 한 장의 사진이다. 6.25전쟁 당시 나이어린 인민군 전사가 포로로 잡힌 뒤 미8군 하사관에게 심문을 받고 있다. 가운데 여성은 통역이다(1950. 8. 18.). 나는 이 사진을 미국 문서기록관리청에서 입수하는 순간 어린시절에 본 인민군 출신 한 아저씨가 떠올랐고, 그를 작품의 주인공으로 그리고 싶었다.
NARA
"나라를 구할 문장가가 되라"
나는 경북 구미에서 태어났다. 유소년 시절 내내 날마다 우리 집 마당에서 금오산을 빤히 바라보며 자랐다. 그때 나의 할아버지는 금오산 기슭에서 야은 길재 선생을 비롯한 많은 선비들이 태어났다고, 어린 손자에게 "너는 나라를 구할 문장가가 되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그 말씀을 가슴 깊이 새기고 평생을 살아왔다. 하지만 내 재능 부족으로 이제껏 변변한 작품을 쓰지 못했다.
그래서 일흔이 넘은 이후, 독한 마음으로 이 작품을 썼다. 기왕이면 내 고향을 무대로 어린 시절에 겪은 6.25전쟁을 회상하면서 다부동전선에서 북남남여(北男南女)의 지극히 아름답고 열정적인 순애보와 이 나라 백성들의 공통된 아픔을 구구절절히 그려보았다. 하지만 이 책은 출간 이후 서점의 평대에 오르지도 못한 채, 공장의 컨베이어 벨트 위 부속품처럼 그대로 밀려날 처지에 놓여 있었다.
이런 사정을 알았는지 평소 나를 도와주신 의병장 후손(조세현 선생) 독립운동가 후손(이항증 선생), 그리고 제자 김홍걸 의원, 미리내성지 방구들장 신부님 등이 솔선 말없이 책을 구매한 뒤 홍보에 힘써주시고 있다.
이즈음, 나는 어린 시절 꿈도 제대로 펼치지 못한 채 붓을 꺾어야 할 때임을 절감하고 있다. 한 후배 작가는 작가생활로 생계를 이어갈 수 없자 야간 경비직을 하고 있고, 내 책을 여러 권 펴내준 한 출판인은 서울에서 더 이상 버텨내지 못하고 경기도 외곽으로 사무실을 옮겨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이게 일부나마 오늘의 우리 문학계의 현실이다.
이런 인문이 죽어가는 세태에 절망함과 더불어 내 재능의 부족함을 깨닫고 그동안 지속해 온 문필생활을 접으려 결심하던 참이다. 그런 가운데 평소 나를 애껴준 몇 분의 애독자 성원에 용기 백배하여 활력을 얻고 있다. 계속 글 쓰는 일을 내 필생 업으로, 건강이 허용하는 한,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다가 잠을 자듯이 조용히 세상을 떠나고 싶다. 그것이 내 마지막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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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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