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 3일 오후 2시 인천 중구 한중문화관 4층에서 인천문화재단과 한국근대문학관이 주최한 '황석영 작가와 함께 하는 북콘서트 - 철도원 삼대' 행사가 열렸다. 이날 사회는 근현대문학 연구의 한 길을 걷고 있는 최원식 인하대 명예교수가 맡았다.
한국근대문학관 동영상
황석영 작가가 <철도원 삼대>를 구상한 건 1989년 방북 때 평양에서 만난 어느 노인의 이야기에서 비롯됐다. 그는 서울말의 옛날식 억양과 단어를 쓰는 평양백화점 부지배인이었다. 고향은 영등포. 황석영도 1943년 당시 만주국의 수도였던 창춘(長春)에서 태어났지만, 유소년 시절부터 고등학생 때까지 대부분의 시간을 영등포에서 보냈다. 두 사람은 대동강변 수산시장에서 만나 긴 이야기를 나눴다. 황석영은 '작가의 말'에서 당시를 이렇게 회고한다.
그 노인은 아버지가 영등포 철도공작창에 다니던 이야기며 그가 철도학교에 들어갔던 이야기, 기관수로 대륙을 넘나들던 이야기를 (내게) 해주었다. 만주의 끝도 없이 펼쳐진 검은 들판 위로 떨어지던 세숫대야만한 붉은 해, 바람에 출렁이는 수수밭의 바다, 온통 빡빡하게 하늘을 메우면서 대륙에 쏟아지던 어린애 머리만큼 커다란 눈송이, 조선의 아름다운 산과 강과 골짜기며 들판에 서 있던 아름다운 간이역 등 서정적이고 감동적인 이야기를 그는 기억하고 있었다.
황석영 작가는 내년이면 80세이자 등단 60주년을 맞는다. 지난해 펴낸 <철도원 삼대>는 그가 78세에 쓴 장편소설이다. 그는 <철도원 삼대>를 쓰는 동안 19차례나 집필실을 옮겨 다녔고, 하루에 8~10시간 정도 글을 썼다고 말했다. 30여 년 전에 구상했고, 본격적인 자료 조사에 1년, 집필에 1년쯤 걸렸단다.
예전에는 중편소설 분량인 400~500매(200자 원고지)가 요즘에는 장편소설로 분류된다. 그는 "이전 기준으로 장편소설이라고 하면 1500매 정도는 돼야 하는데, <철도원 삼대>는 2400매가량, 책으로도 600페이지가 넘는다"면서 소설에 서사를 담으려면 어느 정도 분량이 확보돼야 한다고 말한다.
최원식 교수는 북콘서트 초반에 "1970년대 한국 문학은 소설가 황석영의 등장과 시인 김지하의 등장으로 (문학의) 시대를 교체했다"면서 "지금까지의 업적만으로도 대작가인데도 여든이 가까운 나이에 <철도원 삼대> 같은 굉장한 작품을 써낸 것은 대단하다"고 말문을 열었다. 최 교수는 "백낙청 선생은 '80세 가까운 노작가가 이런 작품을 쓴 것은 세계문학 사상 유래가 없다'고 평가한다"고 덧붙였다.
황석영 작가는 "원로 작가, 그러니까 작가의 말년이라는 건 또 하나의 위기에 봉착한 거"라면서 "자기가 여태까지 쌓아올린 업적이 있는데 (새로운 이야기 없이) 동어반복을 하는 건 매너리즘이니까 거기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책무가 생긴다"고 화답했다. 본인도 백척간두에 서 있는 원로작가인데, 매너리즘에서 벗어나 한 걸음 더 내딛게 해준 작품이 <철도원 삼대>였다는 것이다.
지난해 6월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 때 '소설에서 철도노동자를 택한 이유'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그는 "철도는 양말공장이나 두부공장 같은 거 하고는 좀 다르다. 근대사회를 상징하는 산업이고 노동자들을 상징하는 핵심이기도 하다. 서구도 철도노조의 힘이 세고 역사가 깊다. 서구 산별노조의 맏형이기도 하다. 근대 산업사회의 중심이 철도노동자라고 봤다"고 답했다.
"염상섭 <삼대>는 근대의 입구, 황석영 <철도원 삼대>는 근대의 출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