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두마을 유기견오두마을에 유기견이 돌아다니고 있다. 오두마을뿐 아니라 농촌마을에 개를 유기하고 가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한대윤
얼마전 새벽 공기가 아직 차가울 무렵, 나는 첫차 버스를 타려고 마을 앞길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저 멀리서 버스가 서서히 다녀오는 게 보였고 앞집 박씨 아저씨(가명)는 오늘도 개의 이름을 부르며 뛰놀고 있었다.
언뜻 보면 평화로운 일상이지만 당혹스러운 일은 순식간에 벌어졌다. 버스가 50m 정도 거리에 왔을 때, 박씨 아저씨네 개가 차도로 뛰쳐나왔다. 개 목걸이는 했지만, 오늘도 목줄을 채우지 않았다. 개의 뒤를 따라가던 박씨 아저씨가 소리를 지르며 버스 앞을 막아섰다.
"멈춰, 멈춰!"
개에게 하는 소리인지 버스기사에게 하는 소리인지는 몰라도 다급한 목소리였다. "이장님 저희 개 좀 잡아주세요!" 도망친 개는 나에게 달려오고 있었다. 아직 1살도 안 된 보더콜리 견종은 무언가 재밌는 놀이라도 하는 줄 알았나 보다.
나도 평소 앞집 개를 자주 봐서 사람을 좋아하는 개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멈춰 서서 자세를 낮추고 손을 내밀었다. 보더콜리는 내 품 안으로 파고들었고 그 틈에 개 목걸이를 단단히 쥐었다. 개를 주인의 손에 넘겨주고 난 뒤 바로 버스에 올라탔다.
이 황당한 일에 버스기사님이 단단히 화가 나셨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개를 풀어 놓고 다닌대?!" 나도 이미 화가 나 있었지만 일단 박씨 아저씨도 우리 마을 사람이니, 기사님께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아침부터 당혹스러운 일을 겪으니 식은땀이 나고, 화도 나고, 동시에 죄송했다. 나는 완전히 지쳐버리고 말았다. 불편한 공기가 감도는 버스 안에서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곰곰이 생각했다. 바둑을 복기(服朞)하듯이 마을에서 개들과 있었던 일들은 복기해 봤다.
마당 앞에 '대변'
몇 달 전, 집 안에 혼자 있는데 문 밖에서 '파다다닥' 하는 소리가 들렸다. 경험상 고양이들이 뛰는 소리보다 훨씬 큰 소리였다. 야생동물이라도 다가왔을까 싶어서 조심히 집 문을 열었다. 그런데 웬 커다란 그림자가 한밤중에 뛰어다니고 있었다. 그 보더콜리가 주인과 같이 산책을 하는 모양이었다.
좋지 않은 첫 만남이었다. '남의 집 마당에 함부로 개를 들이면 어떡합니까?'라는 말이 목까지 차올랐지만 참았다. '한 마을에선 최대한 싸우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저 짧은 인사를 한 뒤 문을 닫았다.
다음 날 아침, 마당에 나와 보니 '변'이 있었다. 크기로 보아 전날 만났던 그 보더콜리가 두고 간 것이겠구나 생각했다. '개 주인이면 뒤처리를 하고 가야지 그냥 가면 어떡합니까?'라고 말하려다가 또 참았다.
보더콜리의 천진난만한 얼굴을 봐서 참았던 것도 있고 '그게 저희 집 개가 싼 똥이라는 증거 있습니까?'라고 되물을 것 같아 그만두었다. 개똥을 주워다가 유전자 감식을 맡길 일도 아닌 것 같았다.
목줄이 채워져 있지 않은 보더콜리를 가만히 생각하다 보니, 또 다른 한 사람과 개가 떠오른다. 박씨 아저씨 이전에 개 목줄을 안 채우는 이씨(가명) 아저씨가 있었다. 아저씨는 지금도 내 휴대전화 연락처에 '흰 개 집'으로 저장되어 있다.
이유가 있는 작명이다. 이씨 아저씨를 처음 본 날, 나는 초면에 "아저씨가 기르는 흰 개가 온 마을을 돌아다니며 남의 집 개들을 임신시키니, 목줄 좀 채워주시라"고 당부를 해야만 했다. 주민들의 불만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국 이씨 아저씨는 목줄을 채우지 않았다.
이씨 아저씨는 흰 개뿐만 아니라 여러 품종 견들을 기르는 걸 좋아했다. 나는 댁에 방문할 일이 잦아 갈 때마다 목줄이 채워져 있지 않은 개들을 만나야 했다. 목줄이야기를 넌지시 꺼내도 "우리 개는 안 물어요"라는 말만 들을 뿐이었다. 그러다가 결국, 나는 이씨 아저씨 집 안에서 검은 중형견에게 다리를 물렸다. 그럼에도 이씨 아저씨는 목줄을 잘 하지 않는다.
내가 알기로는 이씨 아저씨 소개로 박씨 아저씨가 보더콜리를 키우고 있다. 모든 퍼즐이 맞춰지는 순간이었다. 개 키우기 초보인 박씨 아저씨가 이씨 아저씨에게 조언을 구했다면, '목줄을 꼭 해야 한다!'고 답하지 않았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