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물에 절이고 있는 끄댕이무들이 끄댕이무는 오래 절이면 아삭한 맛이 떨어진다. 줄기에 숨이 죽으면 씻어서 물기를 뺀다.
오창경
끄댕이무 김치 담기의 첫 순서는 큰무를 알타리 무와 같은 크기로 썰어놓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 다음 과정은 소금에 절이는 과정이다. 미지근한 물을 준비해서 소금 알갱이를 풀어놓는다. 처음으로 김장을 하던 날 찬물에 덜컥 소금을 던져놓고는 나무 주걱으로 젓느라고 시간을 다 낭비했던 시행착오를 겪었다.
학교 과학 시간에 소금이 일정량의 물에서는 더 이상 녹지 않고 실온보다 높은 온도에서 잘 녹는다고 배웠던 지식이 생활에서 이렇게 적용되는 것과는 별개로 여겨졌다. 학교에서 배운 지식은 항상 현실에서 통용되는 상식과 이런 충돌을 겪는다. 지식을 시험지로 평가하고 등급을 매기던 학력고사 세대의 비애를 시골 마을에 살면서 많이 느낀다.
끄댕이무들을 절여 놓은 다음에는 김치에 들어갈 각종 양념들을 준비하는 시간이다. 김치의 맛은 잘 발효된 젓갈 맛이 좌우한다. 채소와 발효된 단백질인 젓갈의 물리적 결합으로 생성한 것이 '김치란 무엇인가'의 정답이다. 부여에서는 오래전부터 백마강에서 잡히는 우어와 갈게(작은 민물게의 한 종류, 부여 사람들은 '갈긔'라고 발음한다) 등을 잡아서 소금에 절여 젓갈을 담가 요리에 다양하게 활용해 왔다.
갈게(작은 민물게의 한 종류)는 백마강 갯벌에 아주 흔했다. 1년 내내 잡히기는 하지만 가을철에 가장 많이 잡았다. 추석이 지나고 날씨가 선선해지기 시작하면 부여 사람들은 액젓을 담글 갈게를 잡으러 백마강 뻘로 가곤 했다. 갈게는 한밤중에 이슬을 받아먹으려고 뻘 속에서 나온다.
강 갯벌에 횃불을 켜놓으면 갈게가 슬금슬금 모여들었다. 그냥 쓸어 담듯이 한 가마니씩 잡아서 젓갈을 담갔다. 튀겨 먹기도 하고 양념을 해서 먹기도 했다. 갈게를 한 항아리 가득 넣고 소금에 재워 놓으면 간장처럼 맑은 액젓이 우러났다. 갈게 액젓은 칼칼하고 감칠맛이 났다. 옛 부여 사람들은 이 갈게 액젓으로 겉절이와 김치를 담가 먹었다. 지금은 더 이상 갈게를 구경할 수 없지만 그 맛은 결코 잊을 수 없다고 부여 사람들은 말한다.
TV 채널을 돌리다가 우연히 감태 김밥에 무청김치를 을 먹고 있는 연예인들을 보게 되었다. 바로 우리 동네 용어로 '끄댕이 김치'였다. 영화 <곡성>의 배우 천우희의 부모님이 직접 심어서 가꾼 끄댕이무들로 담근 김치였다. 천우희 배우가 김치통을 여는 순간 푸른 무청을 깔고 올망졸망 맛깔나게 담겨 있는 끄댕이무들이 눈에 확 들어왔다.
일단 눈으로 보는 식감에도 군침이 돌았다. 끄댕이무는 체면 불구하고 손으로 집어 들고 한입 베어 물고 아삭 하는 소리와 함께 먹어야 제 맛이 나는 김치이다. 출연한 배우들이 시원하고 맛있는 김치라고 극찬을 했다. 배우들이 아작아작 씹어 먹는 소리까지 맛있는 김치로 나오는 것을 보고 나니, 나의 끄댕이무 김치 담기 도전은 설익은 자부심에 자신감까지 얹어졌다.
액젓과 새우젓에 단것으로는 개복숭아청을 준비해 놓았다. 쪽파와 양파, 마늘, 고춧 가루도 꺼내다 놓았다. 감칠맛 담당인 멸치와 다시마 육수도 미리 끓여서 식혀놓고 찹쌀가루풀도 쑤어놓는다. 아! 참, 육수와 찹쌀 풀을 미리 끓여서 식혀놓는 과정이 첫 번째 과정으로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을 깜박했다. 역시 나의 김치 담기는 곁눈질로 배우고 속성으로 익힌 것이라 곳곳에 시행착오들이 도사리고 있었다.
시골 마을 주부들은 1년 내내 김장 거리를 준비한다. 봄에는 새우를 사다가 젓갈을 미리 담가두기도 하고 매실 청 같은 각종 수제 청들을 마련했다가 김치에 넣는다. 시골에 살다보니 나도 남들을 따라서 매실청이며 개복숭아청을 담가 놓기는 했다. 수제로 멸치와 새우젓까지 직접 담그는 집들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