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안녕 시인의 시집
걷는사람
애정과 애증이 한 끗 차이이듯 미움과 마음도 비슷한 속성을 가졌습니다. 특히 애증은 사랑과 애정에서 출발합니다. 애정이 없다면 애증도 발생할 수 없죠. 미움도 마찬가지입니다. 미움도 주고받는 것입니다. 어떤 식으로든 관계가 설정됐다는 의미입니다. 아무런 관심도 없는 누군가를 미워할 수는 없습니다.
큐피드가 쏜 화살에도 유통기한이 있어서 몇 년이 지나지 않아, 화살촉이 빠져버릴 수 있습니다. 삶의 노고는 사랑을 밀어내는 근육을 만들어내고 천천히 큐피드의 화살을 밀어납니다. 오래 아름다운 사랑을 하기 위해선 큐피드의 화살을 꼭 붙잡고 있을 수 있는 반대쪽의 근육도 필요합니다.
한 사람을 오랫동안 변함없이 사랑하기 위해선, 지극한 노력과 정성이 필요합니다. 그런데요, 저 정성과 노력은 어떤 속성을 지녀야만 하는 것일까요.
너무나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사실 엄청난 공약이 필요치도 않습니다. 저 하늘의 달과 별을 따 주겠다던 약속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임을 알았기에 낭만적이라고 웃어넘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삶을 동반한 사랑은 낭만도 필요하지만, 구체적인 계획과 실천 의지가 없다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허황한 말과 맹목으로 쌓은 사랑은 결코 오래갈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진심이 담기지 않은 연기는 필연적으로 실수를 동반합니다. 실수가 진심이기 때문입니다. 추가되는 실수가 그것을 증명하기까지 합니다.
깨끗한 사과는 실수를 만회할 수 있겠지만, 만약 '너도 그렇지 않았냐'고 언성을 높이거나 다른 사건을 내세워 덮으려고 한다면, 그는 분명 사랑이 아니라 연기를 했던 것입니다. 이때 그는, 애증의 대상이 아니라 증오의 대상으로 바뀌어 버립니다. 이런 사랑이라면 무엇이라고 불러야 할까요.
사랑에 빠진 사람의 눈은 애정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런데 이 애정의 눈이 무조건 그의 말과 행동을 긍정하려는 시선은 아니어야만 합니다. 사랑은 따끔한 지적도 필요로 합니다.
따끔하게 지적된 실수를 인정하고 고치려는 노력, 잘못된 길에서 회복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만이 '사랑의 진심'을 가진 자라고 불릴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을 다시 말하면 '사랑의 근력'을 키우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죠. 오늘 우리에게 이런 사랑이, 사람이 필요합니다.
시 쓰는 주영헌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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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쓰기'보다 '시 읽기'와, '시 소개'를 더 좋아하는 시인. 2000년 9월 8일 오마이뉴스에 첫 기사를 송고했습니다. 그 힘으로 2009년 시인시각(시)과 2019년 불교문예(문학평론)으로 등단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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