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운진 대목장 제55호 무형문화재 지정 보유자.
최미향
건축양식의 변화에 따라 전통건물이 사라지고 있는 가운데 충남 서산시 부석면에는 전통기법으로 건축한 '대목장 전수관'이 있다. 문화재청을 검색하다 보면 대목장이란 뜻이 자세히 나타나 있다.
'대목장(大木匠)은 장인이 합쳐진 말이다. 대목이란 집의 구조체에 해당하는 기둥, 보, 도리, 공포를 짜고 추녀내기, 서까래걸기 등 지붕 등을 만드는 일이다. 장인은 손으로 물건을 만드는 일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 또는 예술가의 창작활동이 심혈을 기울여 물건을 만드는 것과 같다는 뜻이다. 대목장이란 대목 분야의 장인 다시 말하면 대목 분야 총책임자를 말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노력을 인정받아 대목장은 2010년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으로 등재됐다.
15세에 입문해 50년을 훌쩍 넘은 현재까지도 전통건축 분야에 정진해온 장운진 선생은 뛰어난 전승기량은 물론, 전통도구와 시설을 체계적으로 갖춘 공방, 그리고 전승체계를 잘 갖추고 있다는 점을 높게 평가받아 3년 전 대목장으로 등재되기도 했다. 지난 11월 27일 오랜 세월 한 분야에 정진해온 장운진 선생을 만나 인간문화재로 인정받기까지의 못다 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 2019년 충청남도 무형문화재 제55호로 지정된 대목장을 만나게 돼서 영광이다. 이 길로 입문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가난 때문이었다. 우리 아버지는 서산시 가사리에서 대목으로 잘 알려진 분이셨다. 6남매 중 다섯째인 나는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가 일하는 곳으로 자주 따라다니며 종일 옆에서 나무를 가지고 놀기도 했다.
10살 무렵,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학교에 입학했다. 하지만 고난은 그때부터 시작됐다. 나는 늘 매를 맞았다. 이유는 돈이 없어 책을 사지 못해 빈 보자기를 가지고 학교에 갔고, 더구나 육성회비를 내지 못해 늘 주눅 들어 했다.
너무 맞아서 살 수가 없어 산으로 도망을 가기도 했다. 이러다간 곧 죽을 것 같단 생각에 집에서는 학교 간다고 말하고 낮 동안에는 배를 쫄쫄 굶으며 산속에 숨어 있었다. 그런 시간이 자그마치 2년이었다. 하지만 꼬리가 길면 잡힌다고, 부모님께 그만 들키고 말았다.
13살부터 지게를 지고 산으로 올라가 나무를 하러 다녔다. 또 시간이 나면 소를 몰고 논밭 가는 연습을 하기도 했다. 잘해야 남의 집으로 머슴갈 수 있기 때문이었다.
내 나이 16살, 배라도 채우라며 아버지는 나를 1년에 쌀 3가마를 받고 이웃집으로 머슴을 보냈다. 그 집에는 서산중학교에 다니고 있는 내 또래 친구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