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인종(자료사진).
오마이뉴스
군사안보지원사령부가 과거 보안사령부 시절 저질렀던 고문 등에 대해서 사과를 하기 위해 확인작업을 하던 중 그로 인해 고문 피해자가 다시금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일이 발생했다.
지난 24일 오전 8시 30분경 한 국가기관 고문 피해자 A씨의 집에 초인종이 울렸다. 방문자는 군사안보지원사령부(안지사) 소속 직원 B씨였다. 고문 피해자 A씨는 얼떨결에 문을 열었고, 사복 차림의 B씨와 5~6분 정도 대화를 나눴다.
B씨는 과거 국가기관에 의한 인권침해 사건에 대해 국방부의 사과를 받을 의향이 있는지 없는지 묻기 위해 A씨의 집을 방문했다고 한다. 행정안전부 과거사 업무지원단에 확인한 결과, 이 방문은 1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화위)의 진실 규명 결과에 기반해 2010년부터 행정안전부 과거사 업무지원단이 지속적으로 각 부처(국가정보원, 국방부, 경찰청 등)에 공문을 보낸 결과다. 최근 국정원·경찰청을 비롯해 관련 기관에서 피해자에 대한 사과를 하고 있다.
'내가 여기 있는지 어떻게 알았지? 혹시?...' 되살아나는 트라우마
사건은 39년 전인 198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문 피해자 A씨는 당시 부산 보안대로 끌려가 약 30일 동안 불법 구금과 극심한 고문을 당했다. 건장한 남성들에게 잡혀갔던 당시 부산 보안대는 '삼일공사'라는 나무 간판이 있었으며, 피해자 A씨는 그곳 지하에서 성기와 양쪽 손가락에 전기를 흘리는 전기고문, 손톱 밑을 이불을 꿰맬 때 쓰는 긴 바늘로 찔리는 고문 등을 당했다.
A씨는 허위자백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A씨는 허위자백으로 간첩이 돼 징역 15년형을 받고 9년을 감옥에서 살다가 1991년 5월 가석방됐다. 그리고 지난 2011년 28년 만에 재심을 통해 대법원에서 무죄를 받았다.
평생을 고문 트라우마에 시달려온 A씨에게 2021년 안지사 소속 직원의 갑작스러운 방문은 트라우마를 되살렸다. A씨에 따르면, 안지사 소속 B씨는 안지사의 전신 보안사령부의 잘못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고 한다. A씨에게 '고생 많이 하셨다'는 언급만 했다. 또한 '만약 우리(안지사)가 선생님에게 사과를 한다면 사과를 받을 의향이 있는지' 등을 물어본 뒤 5~6분 정도 있다가 떠났다. 현관문을 나서며 B씨는 '나는 부하직원이어서 힘이 없고, 오늘 대화는 부대로 돌아가 상관에게 보고하겠다'고 했단다. A씨는 기자에게 이 사실을 전하며 "하루종일 불안에 떨었다"고 말했다.
A씨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안지사에서 우리 집 주소를 어떻게 알았는지 모르겠다"며 "진화위에 주소를 알려준 적이 있지만 예전 주소다. 지금 사는 곳은 이사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보안사령부 후신인 군사안보지원사령부가 아직도 나의 개인정보를 사찰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불안감을 떨칠 수가 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안지사 관계자는 26일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국방부에서 (주소) 자료를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A씨의 경우, 연락처가 없었다. 국방부는 진정어린 사과를 하는 것이 중요해서 피해자를 못 만나면 안 되니까 이른 시각에 (A씨를) 찾아간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이어 "사과 의사 수용 여부를 정중하게 물었던 것으로 안다"고 덧붙였다.
깊은 고민 없는 사과가 가진 중대한 결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