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14대 총선 당시 통합야당이었던 민주당의 '위탁관리자 이기택' '실질적 오너 김대중'과 함께 찍은 김민석의 선거 포스터
김민석 홈페이지
노태우 정권의 반민주적 행태에 야권통합 움직임이 가시화되었다. 통일민주당 중에서 김영삼의 3당 합당에 반대하고 남은 '꼬마민주당'의 이기택 등과 대여 공동투쟁이 전격 합의되었다.
김대중과 이기택은 재야대표와 3자회담을 갖고 수권야당을 위한 통합을 결행하기로 합의했다. 이와 함께 대규모 옥외 집회를 갖기로 했다.
<평민신문>은 7월 19일자 특보를 발행, "날치기 정권 보라매공원서 심판하자 - 겨레여! 마침내 평민ㆍ민주ㆍ재야가 한데 뭉쳤습니다!" 라는 표제 아래 연사 김대중ㆍ이기택ㆍ김관석의 사진을 실었다. '민자당 독재규탄 의원직사퇴선언 및 총선촉구결의대회'에 많은 시민의 참여를 호소하는 특별당보였다.
통합을 위해 평민당은 수임기구를 구성하는 임시전당대회를 열었다. <평민신문> 제51호는 '범민주통합수권정당 건설에 대한 특별결의문'을 비롯, '국민에게 보내는 메시지', '결의문' 등을 실었다. 2면과 3면은 보라매공원의 성공적인 군중집회의 사진과 평민당 의원들이 여당의 날치기 사태에 항의하여 의원직을 사퇴하는 내용, 평민당 3년의 업적과 민자당정권의 죄악상을 대비ㆍ분석했다.
김총재는 노태우 정권의 날치기와 내각제개헌음모 중단을 요구하며 13일 동안 단식에 돌입했다. 소속의원, 지구당위원장, 사무처 직원들도 동조 단식에 들어가 평민당중앙당은 종교사원처럼 엄숙한, 그러나 처절한 진지가 되었다.
<평민신문>> 제60호는 이런 사정을 자세히 싣고, 김총재가 단식 후 "내각제 관련 어떤 협상도 배제한다"는 첫 기자회견 내용을 게재했다.
전남 함평ㆍ영광의 보궐선거가 실시되었다. 평민당은 '지역타파'의 상징으로 영남출신 이수인 교수를 공천했다. <평민신문>은 특보를 발행하여 "김대중과 이수인에게 힘을 주어 영호남 화해 물꼬트자"는 제호의 기사를 실었다. 이후보는 압도적으로 당선되었다.
평민당의 줄기찬 투쟁으로 정부가 지자제를 실시하기로 하였다. 5.16 쿠데타로 사라진 지자제가 우선 기초의회 의원부터 실시하게 되었다.
<평민신문>은 제62호에서 지자체 회복과 내각제 분쇄의 내용을 상세하게 설명하고 "30년만의 지자제 위대한 민주혁명"이라고 선전했다. 박권상ㆍ구종서ㆍ조창현 등 명사들의 지자제 실시 의의에 대한 기고문을 실었다. 이즈음 수서지구 택지특혜분양사건이 터졌다. 평민당은 이 사건이 청와대와 민자당이 거액의 정치자금을 마련키 위해 조직적으로 저지른 권력형 비리로 보고 당력을 동원해 진상규명에 나섰다.
<평민신문>은 제64호에서 노태우 대통령이 해명하고 사과할 것을 요구하는 특집을 꾸몄다. 이어서 제65호는 특보를 제작하여 '수서진실'을 밝히라고 촉구했다.
지자제 실시를 맞아 <평민신문>은 민자당의 날치기와 노정권의 각종 비리를 들어 국민의 힘으로 풀뿌리 민주주의를 살리자는 내용의 지면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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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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