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두마을 대나무 오솔길주말 동안 서울에 들렀다가 집에 들어온 참이었다. 들어오고 나니 문득 이상한 낌새가 느껴졌다.
한대윤
집이 이상하다
오두마을의 어느 평범한 월요일 오후, 주말 동안 서울에 들렀다가 집에 들어온 참이었다. 들어오고 나니 문득 이상한 낌새가 느껴졌다. 한 칸짜리 방에 가구 하나 없는 집이라 금방 눈치챌 수 있었다.
사소한 흔적이지만 방바닥에 깔아 둔 매트 위치, 화장실에 걸려 있는 수건의 위치가 달라져 있었다. 나는 평소 화장실에 수건을 걸어두지 않는 터라 분명 이상한 일이었다. 집에 누군가 다녀간 것이다. 귀촌 2년 차에 접어들 무렵 처음 겪는 황당한 일에 고민이 깊어져 갔다. 누가 다녀갔지?
내가 사는 집은 누군가를 초대하기엔 좁은 집이었다. 그리고 나도 손님 대접을 제대로 해본 경험이 적어 마을 주민들을 집에 초대한 적이 거의 없었다. 필요한 일이 있을 때면 경로당에 모이거나 직접 댁으로 찾아가는 방식으로 주민들을 만났었다.
그러다 보니 주민들도 우리 집 위치를 대강은 알아도 정확히 아는 분들이 적었다. 이런 상황에서 제일 먼저 의심되는 분은 귀농 형님이었다. 평소에도 서로 자주 왕래하고 워낙 가깝게 지내던 형님이었기 때문이었다. 마을 귀농 형님께 조심히 여쭤봤다.
"혹시 이번 주말에 저희 집에 다녀가셨나요?"
"아니, 왜?"
형님의 아니라는 답변을 듣고 도움을 요청드렸다. 집에 누가 다녀갔는데 알게 되시면 알려달라는 말씀이었다. 그러나 생각보다 답을 찾기는 어려웠다. 마을 주민 한 분씩 찾아가면서 집에 왔는지 캐묻기가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대부분 주민들은 집 문고리를 걸지 않고 다녔다. 서로 편하게 왕래하는 분위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나도 문고리를 걸지 않고 다녔지만 막상 집에 누가 다녀가니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이사 와서 처음으로 자물쇠를 사서 달았다.
집에 없어진 물건은 없는지 확인하는 습관도 생겼다. 집에 훔쳐갈 만한 것이 없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한 달가량이 지나고 나서야 사건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정체는 바로 당시 내가 세 들어 사는 집의 주인분이었다. 우연히 툭하고 던진 말씀을 들었다.
"저번에 집에 갔는데 아무도 없더라고. 결혼식 피로연이 있어서 남은 음식 넣어 뒀는데 상해서 다시 내가 빼놨어."
잉? 내 집에 말도 없이 온 게 한 번이 아니고 두 번이라고? 나는 냉장고에 음식이 있는지도 몰랐는데? 주인 어른의 말을 듣고 안도감과 불안감이 동시에 밀려왔다. 하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그저 "네..." 하고 짧게 대답했다.
시골에선 법보다 밥
이 일을 계기로 곰곰이 고민한 끝에 한 가지 결론은 내렸다. 이게 바로 '시골인심의 정체'라는 생각이었다. 농촌사회는 도시사회랑 다르다. 농촌사회의 특징으로 꼽는 것이 시골 인심 혹은 '오지랖'(오지랖이 넓다)이다. 나는 농촌의 중요한 특징이 오지랖에 더해 한 가지 더 꼽는다면 '밥'이라고 말하고 싶다.
종종 "농촌 사람들은 오지랖이 넓어서 선을 안 지킨다"는 얘기를 듣는다. 농촌사회는 기본적으로 가족, 친척끼리 어울려 살았던 곳이기 때문에 서로에 대해 잘 안다. 그러다 보니 이웃들에 대해서도 가족, 친척 같은 가까운 관계를 맺으려 한다.
특히 귀촌한 사람이 있으면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마을에 해를 끼칠 사람인지 도움을 줄 사람인지 관심이 많다. 가깝게 지낼 만한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이 들면 웬만해선 친해지기 어려울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