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과 함께 연탄 배달을 하고 왔습니다

10여명의 봉사자들과 함께 연탄 1500장을 나르다

등록 2021.11.22 12:55수정 2021.11.22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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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2년 만에 연탄을 만났다. 그 연탄을 날라서 연탄을 기다리던 누군가의 연탄 창고를 채웠다. 무료급식센터에서 만난 인연들이 연탄배달봉사를 한다는 소식에 딸과 함께 현장으로 나가면서 나의 어린 시절 연탄에 대한 추억을 얘기했다.


요즘 인기 있는 <오징어게임>에서 나오는 달고나를 연탄불에 해먹다가 친정엄마한테 혼난 일, 죽을 만큼 일어나기 싫은 추운 겨울 새벽에 연탄을 갈며 냄새에 캑캑거렸던 일, 연탄불에 양은 도시락을 데웠던 일, 심지어 연탄가스를 마시고는 온 식구가 추운 마당에 누워 약대신 동치미 국물을 마셨던 일 등등.

이제 21살 내 딸은 동시대를 살고 있는 내가 말하는 연탄 세상이 신기하기만 하다고 했다. 나에게 연탄은 생명의 도구이자 삶의 수단이었고 가족이었고 이웃이었다. 딸에게 연탄은 누군가를 도와주는 봉사자의 상징이니 연탄이 주는 표상이 서로 다를 수밖에 없겠다. 그래도 서로에게 들려주는 연탄 얘기 말미에는 따뜻한 세상으로 가는 길목에 놓인 디딤돌이라는 결론을 내며 봉사현장에 도착했다.
 
딸이 전하는말 '연탄이 고맙네' 청춘의 에너지와 따뜻함을 보여준 딸의 봉사활동이 더 고마웠다.
딸이 전하는말 '연탄이 고맙네'청춘의 에너지와 따뜻함을 보여준 딸의 봉사활동이 더 고마웠다.박향숙
 
현장에 나온 봉사자들은 70대 이모님들과 장년의 장정분들이 있었다. 가장 고령자인 김양자(79) 이모님을 포함해서 십여명의 70대 이모님들은 연탄 나르기 쉬운 방법을 터득하고 있었다. 지그재그로 서 있지 말고 한 줄로 서서 왼쪽 오른쪽 트위스트를 몇 번 추고 나면 다 끝난다고, 이런 봉사는 일도 아니라고 말했다. 

이날 수혜자들이 사는 곳은 군산의 근대역사거리에 있었다. 관광객들의 발걸음이 잦은 이 거리에는 유명한 음식 장소가 모여 있다. 전국에서 가장 오래된 빵집 '이성당', 무 하나로 유명해진 무해장국집 '한일옥'이 있다. 또한 영화촬영지로 유명한 '초원사진관'이 있고 신흥동 일본식가옥이 줄지어 서있다. 관광지 골목이어서 요즘에도 겨울 난방으로 연탄을 사용할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수혜자들은 대부분 월세로 살고 있었다. 집의 주인장들은 군산에 없고, 오래된 일본식 집이었다. 어느 집은 외풍이 심해서 이사 갈까도 생각했지만 사람이 살지 않으면 금방 집 꼴이 사나워져 그냥 산다고 하셨다. 집 내부 모습이 고즈넉하니 편안하다고 말씀하셨다. 또 어느 집은 겉보기와 달리 월명산을 병풍 삼고 있는 정원이 아름다웠다. 때마침 김장 거리로 무를 뽑아다 놓았는데 봉사자들의 수고에 고맙다며 하나씩 안겨주었다. 꼭 무생채를 해먹으라고 말했다.

두 시간 만에 연탄 1500장 5가구(1가구 당 300장씩)에게 전달하는 봉사활동이 끝났다. 사진을 찍는다는 핑계로 놀멍거리며 일했던 나를 대신해서 딸이 의욕적으로 연탄을 날랐다. 


얼마 전 학원에서 온라인 바자회를 통해 모여진 기부금으로 연탄을 구입했고 연탄 수혜자를 추천 받았다. 3일 동안 열린 바자회는 학부모님들의 열렬한 협조로 목표한 기부금을 마련했다.

작년에는 코로나로 인해 연탄대신 쌀을 기부했다. 올해는 위드코로나 흐름을 타고 직접 연탄을 배달할 예정이다. 무엇보다 학생들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봉사활동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항상 '눈오는 날 연탄 나르기'였다고 대답한다. '올해는 꼭 연탄을 날라보자'라고 했다. 연탄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시는 안도현 시인의 <너에게 묻는다> 시구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따뜻한 사람이었느냐


이 단호한 명령문 앞에만 서면 언제나 나는 움츠려든다. 연탄이 나에게 호령하는 목소리에 저절로 내 삶과 방향을 살펴본다. 그러나 오늘 같은 날,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 그것도 연륜이 가득한 인생의 스승들이 보여주는 행동하는 양심을 보면서 위로와 격려를 받았다.
#연탄배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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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과 희망은 어디에서 올까요. 무지개 너머에서 올까요. 오는 것이 아니라 '있는 것'임을 알아요. 그것도 바로 내 안에. 내 몸과 오감이 부딪히는 곳곳에 있어요. 비록 여리더라도 한줄기 햇빛이 있는 곳. 작지만 정의의 씨앗이 움트기 하는 곳. 언제라도 부당함을 소리칠 수 있는 곳. 그곳에서 일상이 주는 행복과 희망 얘기를 공유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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