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강대 메리홀에서 김기설씨 분신자살에 대해 기자 및 학생들에게 설명하고 있는 박홍 서강대총장. 1991.5.8
연합뉴스
1991년의 봄은 민자당 출범 1년 만에 폭압통치로 회귀한 노태우정권에 저항하던 많은 청년학생ㆍ노동자들이 민주제단에 피를 뿌린 '잔인한 91년의 봄' 이 되었다. 이 때 서강대 총장 박홍이 "어둠의 세력" 운운하는 기자회견으로 민주열사들의 희생을 폄훼하여 시민들의 지탄을 받았다. 이 무렵 평민당은 수서비리 국정조사와 경찰의 폭력살인 등 국회의 조사특위 구성 등을 제의했지만 번번이 거부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3월 26일과 6월 20일 두 차례에 걸쳐 기초와 광역 지방의회의원 선거가 실시되었다. 5.16쿠데타 이후 만 30년 만에 실시된 지자제 선거였다.
30년 만에 부활한 역사적 의미를 가진 지자제 선거였으나 공안정국의 서슬과 권력형 수서비리사건 등으로 국민들의 무관심 속에서 치러졌다.
시군구의원(기초) 선거는 정당 공천이 배제되었으나 각 정당은 내면적으로 자당 소속 또는 자당에 우호적인 인사들을 지원했다. 민자당은 기초의원 선거에서 전국적으로 70%를 상회하는 당선자를 내어 3당합당의 위력을 과시했다. 평민당은 호남에서도 일부 의석을 내주는 기대 이하의 성과를 얻었을 뿐이다.
학생들이 공안통치와 살인정권을 규탄했지만 수구언론은 연일 학생들의 부도덕성에 초점을 맞춰 보도했다. 살얼음판 공안정국에서 실시된 선거는 야당이 불리할 수 밖에 없었다. 안정을 희구하는 국민성향 때문이다. 평민당이 패배한 배경이었다.
시도의회의원 (광역) 선거에서도 민자당이 총 866개 선거구 가운데 564개 지역에서 승리, 압승했다. 민자당은 광주ㆍ전남북과 제주를 제외한 11개 시도의회에서 압도적 과반수 의석을 차지했으며 특히 부산의 경우 51개 의석 중 50개를 휩쓸었다. 서울에서도 민자당은 132개 의석 중 110석을 차지하여 22석을 얻은 야당을 패퇴시키고 압승했다.
평민당과 야권의 고민은 컸다. 그동안 당력을 집중하고 김총재가 힘든 단식투쟁 등을 통해 쟁취한 지자제 선거가 결과적으로 노태우 정권의 기반을 강화시켜주는 역할을 하고 말았다. 민자당의 3당합당으로 지역구도는 더욱 철벽을 이루었다. 정책대결이나 민주화의 공적 따위는 지역주의 광풍 앞에서 맥을 추지 못하였다. 3당합당은 선거제의 기본원칙을 훼손한 반민주적 정치야합이기도 했지만, 지역구도를 갈라놓은 국민분열의 요인으로도 작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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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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