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12월 5일 민자당이 새당명을 '신한국당'으로 사용함에 따라 중앙당사 현관에 설치됐던 민주자유당 입간판이 철거되고 있다.
연합뉴스
느닷없이 이루어진 3당통합은 어떤 배경에서 가능했을까.
노태우ㆍ김영삼ㆍ김종필의 자의였을까, 아니면 달리 배후가 있었을까. 당시 문익환ㆍ서경원ㆍ임수경의 방북(밀입북) 사건이 일어나고, 대륙세력 중국과 소련에서 거대한 변화가 일고 있었다.
3당합당 직전 당시 김대중 평민당 총재의 측근이었던 김아무개씨는 이런 말을 했다.
"3당합당이 성사되기 몇 달 전 나는 미국에서 CIA요원을 만났다. 그는 '평민당이 민정당과 합치는 방향으로 노력해달라'고 주문했다. 그러나 나는 정치적 기반이 너무 다르기 때문에 그런 합당은 도저히 성사될 수 없다면서 노(NO)했다. 그랬었기 때문에 나는 통일민주당을 주요 상대로 한 3당합당이 성사됐을 때 전혀 놀라지 않았고 3당합당의 배후에 CIA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음을 직감했다."
미정보기관 소식에 밝은 한 소식통은 3당합당 아이디어 창출에 미정보기관이 개입한 과정은 이렇다고 주장했다.
"3당합당 아이디어의 시원이 어디였는지를 아는 사람은 드물다. 그 시원은 서울의 한 호텔에 모인 세 사람의 머리에서 나왔다. 그 3인은 김아무개 예비역 장군, 차 아무개 목사, 그리고 전중앙정보부 감찰과장 김 아무개씨다. 이들은 모두 각각 워싱턴 정계와 손을 잡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었는데, 그 3당합당 아이디어는 어떤 라인을 타고 워싱턴 정보기관으로 들어갔고, 그것이 다시 청와대로 들어간 것이다. 김예비역 장군은 노대통령과 절친한 사이였고, 차목사는 김영삼통일민주당 총재의 대미창구의 하나였으며, 중앙정보부 출신 김씨는 친CIA 거두인 이후락 전중앙정보부장의 직계로 정보정치에 밝았다." (주석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