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대법원 2부는 2016 총선시민네트워크 사건의 판결을 선고했다. 결과는 지난 2018년 고등법원의 선고내용과 같았다. 선고 후 대법원 정문 앞에서 활동가들이 기자회견을 가졌다.
참여연대
"Mi mancherai se te ne vai
Mi manchera la tua serenita
Le tue parole come canzoni al ventro
E l'amore che ora porti via
당신이 떠난다면 그리울 거예요
당신의 고요한 그림자가 그리울 거예요
바람에 불러주는 노래같은 당신의 음성
그리고 당신이 나에게서 가져간 그 사랑마저도"
잠이 오질 않았습니다. 대법원 선고를 앞둔 전날, 뒤척이다 눈을 뜨니 새벽 3시. 영화 <일 포스티노>의 수록곡인 미 만케라이(Mi Mancherai)라는 노래가 떠올랐습니다. 해석하면 '당신이 그리울 거예요'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얼른 끝났으면 좋겠다던 2016 총선넷 사건의 재판이었지만, 막상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복잡해지더군요.
사실 좀 막연했습니다. 기약 없는 소식 속에 2008년 촛불집회를 열었던 활동가들처럼 10년을 채우는 것 아닌가 생각도 했습니다. 지난주 갑작스레 선고일정이 잡혔다는 말을 듣고도 실감이 안 났습니다. 첫 재판이 시작된 2016년 11월 11일 이후, 5년만에 돌아온 같은 날 대법원 판결이 나온다니 묘하기도 했습니다. 길었던 시간의 문을 이제는 닫아보려 펜을 잡았습니다.
2016년 총선넷 활동가 22명에 내려진 유죄 판결
11일 대법원 2부는 2016 총선시민네트워크 사건의 판결을 선고했습니다. 결과는 지난 고등법원의 선고 내용대로였습니다. 함께 참여했던 활동가들에게 유죄가 떨어졌습니다. 10명에겐 벌금을 내라고 합니다, 총액은 800만 원 정도 됩니다. 나머지 12명의 벌금은 선고가 유예됐습니다.
선고유예 기간 중에 자격정지 이상의 형을 받게 되면, 유예됐던 벌금을 내야 합니다. 적어도 2년 동안은 낙선운동도 하지 말고 입을 다물고 그저 가만히 있으라는 것일까요.
2016 총선시민네트워크는 그해 4월 총선을 앞두고 1000여개 시민단체들이 함께 만든 연대체였습니다. 당시 활동들도 불법과는 거리가 있었습니다. 최대한 현행법의 틀 안에서 부적격 후보들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유권자의 뜻을 반영해 낙선운동을 벌였습니다.
하지만 2016년 4월 총선에서 패한 박근혜 정부는 시민사회단체들을 표적수사했습니다. 선관위는 선거 다음날에 총선넷 공동대표 2명을 고발했습니다. 같은 해 7월에는 소환자를 4명으로 늘리고 압수수색도 하더니, 8월에는 소환장을 남발해 최종적으론 22명까지 불어났습니다.
공직선거법을 위반했다는 어마어마한 죄목이었지만, 검사가 주장한 혐의들은 이에 걸맞지 않아 보였습니다. 부적격 후보에 대한 미신고 온라인 투표를 했다, 구멍 뚫린 피켓을 들었다, 현수막을 잡았다, 마이크와 앰프를 썼다, 불법적인 집회를 열고 발언을 했다는 게 전부였습니다.
사실 아직 쿨하기가 힘듭니다. 하루가 지나가고 난 지금에도 머릿속이 하얗습니다. 도무지 정리도 잘 되지 않습니다. 정말로 지고 싶지 않았던 재판이어서 그런 걸까요. 이런 상황에서 전 어떤 말씀을 드려야 할까요. 마치 사랑하는 사람에게 밤을 새워가며 편지를 쓸 때 같습니다. 무슨 말을 할까. 한 문장, 단어 하나하나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고, 또 다시 반복합니다.
"Mi mancherai mi mancherai
Perché vai via?
Perché l'amore in te sé spento?
Perché, perché?
Non cambiera niente lo so E dentro sento te
당신이 떠난다면 그리울 거예요 너무나 그리울 거예요
당신이 떠나버렸기 때문에
당신의 사랑이 사라졌기 때문에
왜 왜 가야만 하나요?
달라진 건 없지만 그래도 내 마음은 이 질문을 반복하네요"
이런 소감을 발표하고 싶었지만...
주권자 여러분 기뻐해주세요. 날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아서, 날이 그저 그래서, 총선넷과 함께한 지난 5년이 모두 좋았습니다. 저희는 당당히 맞서 싸웠고, 무죄를 받아냈습니다. 오늘의 판결로 시민들의 참정권과 정치적 표현의 자유가 한걸음 더 나아갔습니다. 다 여러분의 관심과 참여 덕분입니다.
선택의 여지는 없었습니다. 시민사회의 정당했던 낙선운동에 대한 박근혜 정부의 표적수사로 시작된 사건이었습니다. 저희는 물러설 수 없었습니다. 소환통보를 받고 28살에 처음 수사를 받을 때도, 5년 전 첫 재판이 시작되었을 때도, 그리고 5년이 지난 같은 날까지도. 모든 게 다시 오지 않을 영광스러운 순간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