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나세균씨 서울시청 시민분향소에 게시된 그의 과거 사진
손가영
1967년 전남 나주에서 태어난 나씨는 1995년 노량진수산시장의 판매직 직원으로 입사하면서 수산시장에 발을 들였다. 2010년부턴 수산시장에 '여천수산'이란 이름의 활어회 가게를 운영했다. 나씨는 회를 팔면서도 꾸준히 수협의 현대화사업 추진 과정이 불합리하다고 목소리 냈고, 2016년부터 적극적으로 반대 투쟁에 참여했다.
사망 직전까지 반대투쟁에 함께 했던 나씨는 듬직한 동료로 정평이 나 있었다. 상인 강연화씨(55)는 "생김새처럼 품성도 정말 우직한 동지였다. (다른 상인들에게) 어머니, 어머니 하면서 친근하게 굴다가도 사람들이 힘들어 보이면 자신이 제일 앞장서서 싸웠다"며 "내가 덩치가 작으니, 용역 깡패들 폭력이 한창일 땐 앞에서 버티고 있어 주기도 했는데 참 힘이 났다"고 말했다.
강씨는 "사람을 잘 챙겼다. 상인들이 나이 든 노인이니 힘들어하면 안마도 해주고, 옆에 누가 지나가면 그냥 안 보내고 장난치고 위로하던 따뜻한 사람이었다"며 "'누구 하나 죽어 나가야지 해결되나' 말하곤 했는데 말이 씨가 된 것 같다. 마음이 너무 아프다"고 말했다.
2016년 신식 노량진 수산시장이 설립되면서 현대화사업 반대 투쟁은 그 수위가 높아졌다. 수협 직원과 수협이 고용한 용역 직원들과의 대립이 심해지면서다.
서울시와 수협은 노량진수산시장 현대화사업은 시장 종사자들 상우회 80%와 중도매인조합 74%의 찬성을 얻어 추진됐고, 상인들이 지원책과 입주 기회를 줬지만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종건 '옥바라지선교센터' 사무국장은 8일 나씨의 분향소에서 열린 예배에서 "그들은 '이 거지 같은 X들아' 하며 축구공처럼 우리 재산을 발로 차고 전기·수도를 끊고 물고기와 바닷물을 바닥에 쏟아내는 폭력을 저질렀고, 나세균은 두려움에 떨면서도 집 문밖을 나서 현장으로 향했다"고 말했다.
결국 2019년 8월 구 노량진수산시장 부지 내 모든 점포가 철거됐다. 그러나 상인 80여 명은 반대 투쟁을 계속 이어 나갔다. 이들은 노량진역 인근에 농성장과 노점상을 차려 '현대화사업 재평가'와 '구 노량진시장 부지 내 영업'을 요구했다. 인근 육교엔 텐트촌을 차려 투쟁하는 상인들이 거주하고 있다.
나세균씨는 2019년 노량진수산시장 현대화 비상대책 총연합회 청년국장을 맡기도 했다. 그렇게 2년 넘게 노량진역 농성장, 텐트촌, 자택을 오가며 수협과 서울시를 상대로 싸우다 결국 숨을 거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