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 점령지에서 휘날리는 IS 국기
twitter갈무리
터키는 러시아와 손잡고 쿠르드족 자치정부가 있는 로자바를 시리아에 되돌려 주려고 한다. 또, 터키가 아프린 지역을 갖고, 기타 지역은 시리아가 차지해 쿠르드족이 무너지길 바란다.
많은 쿠르드인이 전쟁 통에 시리아 정부군, 터키군, IS, 러시아 공습과 대량학살 등으로 시리아와 이라크에서 죽어 갔다. 그래서 로자바 산하에는 순교자, 안팔 대량학살 희생자, 정치범과 그 가족 및 희생자를 지원하는 안팔순교부가 있다.
배신의 연속... 독립국 건설의 꿈
IS가 괴멸되자 2019년 10월 트럼프는 에르도안과 통화 후 북부 시리아에서 갑자기 미군을 철수시킨다. 그러자 터키는 미국의 묵인 아래 쿠르드족이 점령한 시리아 북동부를 공격한다. 불과 몇 일 전까지 미국의 동맹으로 IS와 싸웠던 쿠르드족의 비명을 미국은 또 외면한다.
1918년 1차 세계대전이 끝나며 미국 윌슨 대통령이 '민족자결주의' 등 14개 조항을 발표하자, 유럽에서는 쿠르디스탄(쿠르드족의 땅)의 국경이 논의되었다. 그러나, 터키가 강하게 반대하자 영국과 프랑스는 쿠르드족의 거주지역을 터키, 이라크, 시리아에 걸쳐 분할했다.
1922년부터 2년간 이라크가 영국의 영향 아래에 있을 때 짧게나마 쿠르드 왕국을 세운 적이 있었다. 1927년 터키에 세운 아라라트 쿠르드 공회국은 3년을 버텼다. 1946년 이란에 마하바드 쿠르드 공화국이 수립된 지 1년 만에 소련의 배신으로 무너진다. 1963년 미국은 이란 바트당 군사정권을 지원해 미국을 도왔던 쿠르드족을 살상하게 했다. 1975년 쿠르드족은 사담 후세인 정권에 봉기했지만, 이란이 배신하며 봉기는 실패한다.
1988년 3월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은 국제사회가 금지한 신경 독가스를 안팔지역에 살포해 쿠르드인 1만5000여 명을 죽거나 장애로 만들었지만 미국은 묵인했다. 그러나 1990년 후세인이 쿠웨이트를 침공하자 조지 부시와 영국은 쿠르드족과 시아파가 후세인 정권에 대항하도록 지원한다. 미국을 돕던 쿠르드족은 꿈에 그리던 쿠르드 자치 공화국을 세웠다. 그러나 미국이 지원을 끊고 이라크의 반격에 곧 공화국은 무너졌다.
2007년 미국은 터키가 이라크 내 쿠르드 지역을 폭격하는 것을 허락한다. 2014년 시리아 내전이 발생하자 쿠르드족은 시리아 내 주요 도시들을 장악하며 IS와 대적한다. 시리아 내에서 믿을 수 있는 동맹을 찾던 미국은 공습으로 쿠르드족의 IS 격퇴를 돕고, 무기와 자금까지 지원했다. 미국 등 서방국가가 쿠르드족의 독립국 건설을 보장하는듯했다. 쿠르드족은 이제야말로 국가 건설 역사를 새로 쓰는 정점에 서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쿠르드족은 또 한 번 미국과 유럽 동맹국으로부터 배신당했고 독립국의 꿈은 깨졌다. 미국 오바마나 트럼프 모두 쿠르드족의 독립국 건설을 원치 않았다. 그래서, 쿠르드 지도자들은 시리아 아사드 정권과 러시아의 손을 놓지 않고 있다.
미국 철수 후, 시리아 쿠르드족은 국가 지위를 얻기보다 생존을 위해 홀로 싸우고 있다. 이라크에서는 전쟁 전 영토의 40%를 잃었다. 수년간 미국을 도운 결과 시리아와 이라크의 쿠르드족은 얻은 이익보다 손실이 더 컸다.
그러나 다 잃은 것은 아니다. 장기적 관점에서 오히려 쿠르드 국가 건설의 길이 보였다. 쿠르드족 대다수는 아직 지리적으로 흩어져 있지만, 그들은 항상 하나의 쿠르드족 국가의 구성원이라고 여기고 있다.
정식 쿠르디스탄 공화국은 가까운 시일 내에 실현될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시리아에서도 쿠르드 인민당은 자치권을 계속 추구할 것이다. 쿠르드족 2000만 명이 사는 터키에서도 온갖 정치적 압박과 탄압에도 불구하고 선거에서 이기고, 터키 제3의 정당으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