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급식실 주방 모습.
연합뉴스
그러던 중 화성의 모 고등학교에서 벽에 걸린 사물함이 떨어져 휴식중인 조리실무사 4명이 크게 다쳤다는 소식을 접했다. 9명의 조리실무사 중 4명이 다쳐 119에 실려 갔는데 그 날 5명의 조리실무사들과 대체인력으로 급식을 강행했다는 얘기였다. 그 날 다른 사고 없이 정상적인 급식이 진행 되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너무 화가 났다. 9명의 일을 5명이 나눠서 했다면 분명 일의 강도며 일의 집중도가 엄청났을 텐데, 게다가 아침에 큰 사고를 목격했다면 그때의 나와 같이 불안하고 떨리는 마음이었을 거라는 생각에 눈물이 났다.
그 중 한분은 중상을 입어 하반신 마비라는 중증이라는데... 아무리 대체인력을 투입한다고 해도 그 대체인력이 기존 인력을 대신할 수 없음이 당연한 것인데 인원수만 채웠다고 조리에 문제가 없을 거라 생각한 학교는 과연 할 말이 있을까?
내가 우리의 사고로 접했던 그 마음을 이분들도 경험했으리라 짐작하니 너무 화가 났다. 뉴스 기사로 사고가 난 휴게실을 볼 수 있었다. 9명이 다함께 앉아 있을 수조차 없을 정도로 좁았고 열악하기 그지없어 보였다. 그 장소가 휴게할 수 공간이 과연 될 수 있을까? 그저 옷을 갈아입기 위한 탈의실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협소한 휴게실에 둘 공간이 없어서 벽 중간에 허술하게 옷장을 매달은 업체도 화가 나고, 옷장을 설치한 업체에 책임을 묻겠다는 진심 없는 도교육청도 짜증났다. 그런 상황에서 급식을 강행한 학교는 너무나도 원망스러웠다. 책임을 묻고 징계를 하면 하반신 마비를 평생 안고 가야 하는 분은 누구를 징계할 수 있을까? 과연 징계 할 곳이 있기나 한 건가?
그리고 의문이 들었다.
만일 사고 상황을 아이들이 알게 되고 급식이 진행되지 않았다면 아이들은 학교를 탓했을까? 그런 결정을 한 학교는 과연 그게 최선이었을까? 우리는 그냥 급식을 위한 도구였던 것일까? 학교에서 나는 그저 도구였나?
아물고 있던 그 동료에 대한 죄책감이 다시 몰려왔다. 한 번도 난 내가 급식을 위한 도구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난 그저 아이들에게 위생적이고 건강하고 이왕이면 그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 맛있는 식사를 제공해 주고 싶었을 뿐이다. 이 일을 하는 분들은 모두 다 같은 마음일 것이다.
내가 이 일을 시작한 건 음식 만드는 걸 어릴 때부터 좋아했고, 미래의 우리나라 주인들인 아이들에게 위생적이고 맛있는 음식을 내 손으로 먹이고 싶어서였다. 이왕이면 내가 잘하는 일로 보람도 느끼고, 수입도 생기면 좋으니까 다들 힘들다 만류해도 도전해 본 것이었다.
이 일을 시작할 때 나의 자녀들도 학교 아이들과 비슷한 나이였기 때문에 정말 내 아이를 먹인다는 생각으로 정성으로 음식을 만들었다. 그렇지만 내가 마음 먹었던 것보다 일은 훨씬 험난했고 내 몸은 점점 더 망가져갔다. 학교는 안전하고 깨끗하고 반듯하지만 우리가 일하는 급식실은 사실 너무나도 치열했다.
퇴근이 빠르지만 일찍 출근하기 위해 남편 출근이며 아이들 등교준비를 새벽부터 미리 해야만 했고, 빠른 퇴근 후에는 정형외과며 한의원이며 근골격계 질환 치료를 위해 병원을 전전해야 했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니 오죽하면 매달 나오는 근속수당이 한달치 병원비라는 우스개 소리도 이제 농담이 아니었다.
쾌적하고 위생적인 작업장은 매일 작업 후에 독한 세제로 광내고 힘주어 수세미질 하고 뜨거운 물을 뿌려 유지해야 하고, 보이지 않는 구석구석들도 매일매일 락스를 부어가며 물때가 생기지 않게, 음식물이 남지 않게 청결하게 유지해야 했다. 작업 중에는 팔팔 끓는 뜨거운 것들을 많이, 빠르게, 조심해서 다루어야 하고, 작업장을 이동할 때는 기름이 튄 바닥에서 넘어지지 않게 발바닥에 힘을 주며 장화를 신고 뛰어 다녀야했다.
또, 주어진 재료로 최대한의 맛을 끌어내려고 인터넷 검색도 해보고 여러 의견도 들어보고 하며 여러 번 손이 가게 정성으로 만들지만 식판에 담아 놓으면 볼품없어 보이기를 반복했다.
항상 조리 완료 후 2시간 안에 배식을 해야 하기 때문에 우리는 항상 배식시간 전에 쫓기듯 조리를 완료해야만 했다. 배식 전 배식대에 서 있을 땐 옷은 땀과 냄새로 절어 있고, 얼굴은 땀과 음식물 범벅에 미처 닦지도 못한데다, 심장은 마치 100미터 달리기를 하고 난 듯 쿵쾅거린다. 아이들이 내 앞을 지나갈 때마다 '맛있게 먹어'라고 내뱉는 말은 어쩌면 내 심장을 진정시키기 위한 주문일지도 모르겠다.
아이들 배식이 끝나면 본격적인 우리의 2차전 100미터 달리기가 남아 있다. 엉망진창인 식판을 정리해서 세척실로 끌고 와 85도가 넘는 뜨거운 물과 세제로 불리고 1차 2차 3차까지 세척을 한다. 뜨거운 열기로 가득한 세척실에서 땀으로 따가워진 눈을 고무장갑으로 쓸어가며 다른 집기류와 도구들을 세척하여 마무리한다. 그리고 모든 것을 원래 위치로 이동하면 2차 달리기가 끝이 난다.
식당과 작업장 불이 꺼져도 우리는 다시 마지막 3차전에 들어간다. 삶아서 세탁 한 수십장의 행주들을 널어 말리고 아침에 널어 두었던 빨래들을 뜨거운 소독고를 열어 정리한다. 그 와중에 한 번에 최대 3명씩만 샤워가 가능한 샤워실과 화장실에서 순번을 정해가며 샤워를 한다. 샤워를 하고 나와도 많은 사람으로 북적이는 휴게실 온도와 습도는 쉽사리 떨어지지 않는다. 모두의 샤워가 끝나 가면 휴게실 온도가 떨어지고 퇴근시간이 다가온다. 그리고 우리는 병원으로 퇴근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