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제된 군부대 입구(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연합뉴스
붙잡힌 탈영병이 국민참여재판 피고인석에 섰다. 2019년 11월 18일 수원지법 제12형사부 법정엔 판사, 검사, 국선변호사, 피고인 A 일병 외에도 시민 9명이 배심원 자격으로 자리했다.
2019년 6월 2일 탈영 후 3시간 20분 만에 잡힌 A 일병. 군사법원 재판은 국민참여재판 대상에서 제외되지만, 사건 후 '전시근로역'으로 역종이 변경돼 현역 신분이 아니었던 A 일병은 민간법원으로 기소됐고 국민참여재판을 받을 수 있게 됐다.
A 일병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배심원 9명은 A 일병의 '죄'를 어떻게 판단했을까.
지휘관의 묵살
드라마 <D.P.>의 조석봉 일병 역시 탈영병이다. 군무이탈죄는 평시라 하더라도 징역 1년 이상 10년 이하의 형(군형법 제30조 제1항 제3호)을 받을 수 있는 중죄다.
그럼에도 시청자들은 조 일병의 탈영보다 그가 앞서 겪었던 일에 주목했다. 선임을 폭행하고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은 조 일병보다 끊임없는 구타·가혹행위에 시달리던 조 일병의 모습이 이 드라마를 이끄는 주제였다.
A 일병도 구타·가혹행위의 피해자였다. 특히 피해 사실을 지휘관에게 알렸음에도 묵살 당했고, 되레 징계를 당할 위기에 몰렸다. 아래는 1심 판결문에 나와 있는 내용이다.
피고인(A 일병)은 2019년 5월 30일 경기 고양시에 있는 소속대 지휘관실에서 지휘관 B에게 폭행 및 욕설 피해를 보고했다. 하지만 다음날 B로부터 "이 건에 대해 조사 중 너도 동료들에게 욕설한 것이 식별돼 조사 후 혐의가 인정되면 징계할 예정이다"는 말을 들었다. (중략) 오히려 문제를 제기한 자신에 대한 책망의 분위기가 부대 내에서 팽배하자 (피고인은) 극도의 좌절감을 경험하는 상황에 놓여 있었다.
2019년 6월 2일 오전 4시 50분, A 일병은 행정반으로 향했다. 앞서 유서를 남긴 직후였다. 행정반에서 자신의 휴대전화를 꺼내 나오던 A 일병은 당직부사관 근무 중이던 동기와 마주했다. 간부인 당직사관은 자리에 없는 상황이었다. 평소 친밀한 관계였던 동기는 A 일병을 막아섰다.
"너 뭐하냐!"
"신경 쓰지 마라."
동기의 팔을 뿌리친 A 일병은 주머니에서 공업용 커터칼을 꺼냈다. 커터칼과 마주한 동기가 당시 어떤 느낌을 받았는지, 이후 어떤 생각을 하게 됐는지 판결문엔 이렇게 나와 있다.
아무 생각 없이 머리가 하얗게 되었고 정말 당황스러워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일단 칼이니까 다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어떻게 조치해야 할지 너무 당황스러웠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다치게 할 거였으면 칼(날)을 꺼냈겠지만 가까운 거리였는데도 칼(날)을 꺼내지 않았다. 피고인의 유서 내용을 보니 '진짜 힘들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고 제게 도와달라고 말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칼날도 뽑지 않은 커터칼은 단지 자기자신을 자해하기 위한 도구였고 도와달라는 신호가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A 일병은 오전 5시경 종교행사에 간다며 위병소 근무자를 속인 뒤 부대를 빠져나갔다. 그가 발견되기까진 채 3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오전 7시 40분경 PC방을 수색 중이던 C 중사에게 발견된 A 일병은 오전 8시 18분 헌병에 긴급체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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