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철과 친구들이 '아름다운 베르네 산골'을 부르는 장면.
kbs 갈무리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아름다운 베르네'의 기원을 찾아 나섰다. 노래의 뒷부분은 포겔리지(Vogel-Lisi 또는 Vogellisi)라는 베른 지역 사투리로 된 민요의 후렴구와 비슷하긴 하다.
하지만 포겔리지는 전혀 요들이 아니다. '오~ 필승 코리아' 분위기의 우렁찬 응원가 스타일의 노래다. 이야이야이야오! ('MATTY VALENTINO VOGULISI (VOGELLISI, VOGLLISI)'로 검색해서 노래를 들어볼 수 있다) 학생들에게 포겔리지를 물어보니 대부분은 모르고 몇 명만 들어봤다고 한다.
좀더 찾아보니 <한국 최초의 요들 Yodel, 아름다운 베르네를 찾아서>라는 영상이 있었다. 원곡으로 여겨지는 프란츠 지겐탈러(Franz Siegenthaler)의 '다스 베르너 오버란트'(Das Berner Oberland)라는 노래는 '아름다운 베르네'와 도입부가 비슷하지만 역시 많이 다르다. 결국 지겐탈러의 곡에 포겔리지의 후렴구가 더해지고, 거기에 스위스의 요들러 피터 힌넨이 요들 부분을 추가해서 부른 것이 현재 우리가 아는 그 멜로디다. 이 내용을 추적한 분은 세계 요들의 날을 만든 한국의 요들러 임피터 씨다.
1968년에 한국 요들의 대부 김홍철 선생님이 스위스에서 요들을 배워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그 멜로디에 한국어로 가사를 붙인 것이 '아름다운 베르네 산골'이 된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국민요들이 되어 누구나 흥얼거리지만, 스위스에서는 아무도 모르는 노래였다.
베르네는 이제 한국 요들?
한국의 요들러들 중에 나처럼 '아름다운 베르네의 실체(?)'를 알게 된 뒤 재미있는 문화의 변용과 이식을 시도하신 분이 있었다. 베르네는 이제 한국 문화의 일부다, 그럼 이 노래를 한국 요들이라고 부르지 못할 이유가 없다, 베르네를 한국 땅에서 찾아보자!
놀랍게도, 한국에 베르네가 있었다. 경기도 부천 원미산에 베르네라는 지명이 있고, 베르네라는 시내가 있었다. 그리고 봄이 되면 원미산을 뒤덮는 진달래는, 같은 진달래 속의 알핀 로제와 거의 똑같이 생겼다. 맑은 시냇물이 넘쳐 흐르고, 새빨간 알핀 로제가 이슬 먹고 피어 있으니, 은근슬쩍 '아름다운 베르네 산골'이 여기라고 해도 될 것 같다.
게다가 한국 번안곡의 '베르네'라는 지명은 원곡과 일치하지 않는다. 베른은 현지 발음으로 베른 또는 배른이기 때문에, '베르네'는 한국 가사에만 존재하는 지명이다. 아마 '베르너 오버란트 이스트 쇤'에서 '베르너' 부분을 리듬에 맞게 번역하다 보니 세 글자 '베르네'로 옮긴 것으로 보인다(요들의 한국화를 염두에 둔 김홍철 선생님의 선견지명이었나 하는 생각을 장난삼아 해보았다).
연가, 라쿠카라차, 시네마 천국
번안곡이 완전히 한국에 정착한 또다른 예는 '비바람이 치는 바다 잔잔해져 오면 오늘 그대 오시려나 저 바다 건너서'로 시작하는 노래 '연가'다. 나는 어릴 때 이 노래가 한국 건전가요인 줄 알았다. 뉴질랜드 마오리족의 민요 '포 카레카레 아나'라는 것을 알고 얼마나 놀랐던지! 한국전쟁 때 뉴질랜드 병사들이 부르면서 한국에도 이 노래가 전파되었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캠프파이어 때 손뼉을 치며 발랄하게 부르지만, 원곡은 훨씬 더 느리고 서정적이다. 가사는 원곡과 거의 비슷하며, 다만 바다가 아니라 호수다. 깊고 넓은 물을 용감하게 헤엄쳐서 연인을 만나러 오는 쪽(히네모아)이 여자고 피리를 불며 물가에서 연인을 기다리는 쪽(투타네카이)이 남자다.
'라쿠카라차 라쿠카라차 아름다운 그 얼굴'이라는 가사의 '라쿠카라차'도 원래는 멕시코 혁명가요다. 멕시코 혁명은 100만 명의 죽음을 뒤로 한 채 결국 실패했고 혁명을 이끌던 사빠따(전봉준 느낌), 판초 비야(일지매 느낌)도 암살당했지만, 그 노래는 살아남아 좀 엉뚱한 가사로 한국에서도 불리고 있다.
'아름다운 베르네 산골'이 스위스에서는 거의 아무도 모르지만 한국에서는 국민요들인 것처럼, 이탈리아 영화 '시네마 천국'도 한국에서는 국민영화로 여겨지지만 이탈리아에서는 그냥 여러 영화 중 하나인 것 같다. 이탈리아인 친구들에게 '시네마 천국'을 한국인들이 정말 사랑하고, 첫 개봉 때 뒷부분 30분 삭제된 걸 뒤늦게 알았을 때 다들 충격에 빠졌다고 말해줬다. '영화를 30분이나 자르고 말도 안 해줬다고? 웬일이니!' 이런 반응을 기대했는데, 정작 이탈리아인 친구들은 그 영화를 안 봤다!
요새는 반대의 상황도 많이 겪는다. 만나는 외국인마다 '오징어 게임' 이야기를 하는데 정작 나는 잔인한 영상을 좋아하지 않아서 그 드라마를 안 봤다. 또 나를 만나면 반가워하면서 자기가 김치 매니아라고 소개하는 외국인들도 있는데 정작 나는 매운 음식을 못 먹어서 김치를 별로 안 좋아한다. 나는 오징어 게임도 안 볼 것이고 김치도 잘 안 먹지만, 그 친구들이 오징어게임을 자기 식대로 해석하거나 김치를 현지 재료로 만들어 먹는 모습은 흥미롭게 지켜보고 서로 의견을 나눈다.
이제 한국 기원의 문화는 한국만의 것이 아니라 그들의 것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더 정확히 말하면 '우리' '그들'의 구분도 사실 존재하지 않는 허상일 뿐이다). 기원이 다른 지역이라도 한국 문화의 일부가 된 노래, 이야기, 영화를 한국인들이 변용해서 즐기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한류를 타고 다른 지역으로 이식된 한국 문화를 그 현지 사람들이 자유롭게 변화시키는 것도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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