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력주의에 따른 불평등은 문제가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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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주의에 찬성하십니까?"라고 묻는다면 선뜻 대답하기 어렵다. 언뜻 생각하기에 능력주의는 별 문제가 없어 보인다. 타고난 재능과 노력에 따라 보상이 주어진다는데 무엇이 문제인가. 노력한 만큼 결과를 가져가는 것 이상 합리적이고 공정할 수 있나. 작년 말에 출판되어 올 한 해 동안 숱하게 회자된 마이클 샌델의 '공정하다는 착각'과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가 취임하자마자 꺼내든 정치인 자격시험 논쟁까지, 능력주의는 이제 우리 사회의 작동 원리를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 말이 되었다.
한국의 능력주의는 '시험만능주의'와 비슷하다. 타고난 IQ야 서로 다를 수 있지만, 노력을 배가하여 한날한시에 시험장에 들어서 같은 시험지로 치르는 시험이야말로 더할 나위 없이 공정한 기회이자 과정이라고 여긴다. 이것은 각종 고시와 등단, 공채 등 결정적 시험으로 신분을 결정짓는 문화를 확고히 했다. 아무리 수능과 같은 표준화시험이 소득이 높을수록 유리할 수밖에 없는 시험이라는 과학적 근거를 제시해도, 시험에 대한 믿음을 거두지 않는다.
얼마 전 <한국의 능력주의>를 펴낸 사회비평가 박권일은 한국인에게 능력주의란 강력한 이데올로기라고 말한다. 특히, 한국의 능력주의는 '시험을 통한 지대추구의 정당화' 경향이 매우 높다고 지적한다. 과정의 공정에 집착한 나머지 결과로 주어지는 보상의 격차가 얼마나 벌어지든 간에 개의치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나라 사람들은 불평등은 기꺼이 참아도 '불공정'은 죽어도 못 참는 특징을 보인다고 역설한다.
이와 관련해 주목할 만한 통계가 있다. 1981년부터 2020년까지 세계 사회과학자들이 참여한 세계가치관조사 결과(7차, 2017-2020년)에 따르면 한국인의 64.9%가 능력에 따른 소득 불평등에 찬성하고, 12.4%만이 평등에 찬성한다. 이 숫자는 전세계적으로 유례가 없을 정도로 큰 격차를 보인다. 여기에서 능력주의가 지배하는 사회의 문제가 드러난다. '소득'이라는 결과가 한 개인의 순수한 '노력'만으로 주어지는 것일까. 우연적으로 발생하는 운은 차치하고서라도 개인이 노력을 하는 데까지는 가정의 경제적 배경과 사회문화적 자본이 그 토대가 된다. 개천에서 나는 용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실은 매우 드문 일이다. 그럼에도 능력에 따른 소득불평등을 당연하게 여기는 우리의 믿음이 사회의 구조적 모순까지 온전히 개인의 몫으로 돌리며 불평등을 강화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