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스러운 멋이 있는 황리단길 한옥 카페.
경북매일 자료사진
그렇다면 이렇게 달라진 '경주의 밤'을 이제는 누가 즐기고 있을까? 그 궁금증을 풀어보기 위해 어두워진 길을 달려 21세기 경주의 핫 플레이스로 떠오른 황리단길을 향했다.
지척에 동궁과 월지, 첨성대, 계림, 대릉원 등이 몰려 있으니 서라벌의 밤 풍경을 두루 살필 수 있었을 것 같았다.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경주시는 "밤에도 잠들지 않는 도시"라는 슬로건으로 여행자를 유혹한다. 때가 때이니만큼 '코로나19 바이러스'의 횡포를 막기 위한 마스크 착용 등 개인위생 규칙 준수는 매너 있는 관광객의 기본.
경주의 주요 여행지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보여주는 문화관광 홈페이지는 '밤의 경주'를 다음과 같이 설명해준다.
"동궁과 월지, 월정교, 경주읍성 등 내로라하는 야경 명소들이 경주의 화려한 밤을 밝힌다. 경주세계문화엑스포의 '루미나 나이트워크'도 볼거리다. 이곳은 스토리가 있는 숲속 산책길이다. 기마인물형 토기에서 착안한 '토우대장 차차'가 이승과 중간계, 지하세계를 넘나들며 천년왕국 신라로의 대장정을 안내한다."
야경을 즐기는 젊은 연인과 가족 단위 관광객들
예약해둔 숙소에 짐을 풀고 어둠이 깃들기 시작한 황리단길로 나섰다. 꽤 많은 여행자가 삼삼오오 거리를 오가고 있다. 대부분이 20~30대로 보이는 연인들과 가족 단위 관광객들.
손을 꼭 잡거나 다정하게 팔짱을 낀 젊은이들은 저녁을 먹으며 시원하게 맥주 한잔을 마시기 위해 분위기 좋은 식당과 카페를 찾아다녔다.
밤의 황리단길은 그런 연인들의 요구에 제대로 응답하는 곳으로 이미 이름이 높다. 개조하거나 신축한 한옥풍의 건물엔 한식당과 일식당은 물론 아시아와 유럽의 다양한 요리를 맛볼 수 있는 레스토랑이 촘촘히 들어서 있다.
여러 종류의 수제 맥주와 포도주를 판매하는 카페들은 실내 장식이 감각적이고 세련됐다. 서울이나 부산의 유명 카페 못지않다. 또한 여타 도시에 비해 음식과 음료의 가격도 합리적으로 보였다.
내가 들어간 곳은 한옥을 개조해 만든 이탈리아 음식점이었는데, 피자와 파스타 맛이 썩 좋았다. 한국식 전통가옥에서 유럽 요리를 즐기는 것. 경주가 아닌 다른 지역에선 쉽게 하기 힘든 경험이다.
반세기 전 신혼여행객의 자리를 대신 채운 연인과 식구들이 식사 후 찾아갈 '서라벌의 야간 명소'는 어딜까? 열 살쯤으로 보이는 아들을 앞세운 부부의 뒤를 따라 '경주의 밤' 속으로 성큼 들어섰다.
유럽과 남아메리카, 아시아의 수십 개 나라를 여행한 친구가 언젠가 이런 말을 했다. "한국은 늦게까지 술을 마시고 인적 드문 밤거리를 걸어도 위험하지 않은 세상에 몇 안 되는 국가 중 하나야."
이 말이 터무니없는 과장만은 아니다. 사실 한국의 야간 치안은 어느 나라보다 좋은 편이다. 큰 도시와 소읍(小邑) 모두가 그렇다. 일단 곳곳에 가로등이 켜져 환하고, 범죄 예방 효과를 인정받은 CCTV도 요소요소에 설치돼 있다.
경주도 마찬가지다. 첨성대에서 시작해 계림, 월정교, 동궁과 월지를 거쳐 대릉원 인근까지 2시간 가까이 밤의 경주를 유유히 산책했다. 당연지사 안전을 위협하는 어떤 것도 발견하지 못했다.
게다가 가는 곳마다 많은 관광객들이 야경을 즐기고 있어 '지금이 밤인지 낮인지' 헛갈릴 정도. '신라의 달밤'을 걷고 싶다는 로망은 몇몇 사람만의 꿈이 아닌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