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에서 최초로 전기가 들어왔던 정부양곡 정미소의 변전소석양이 지는 변전탑에서 멈췄던 시간을 말해준다.
오창경
가치를 알고 나면 시각도 달라진다. 동네 민원 발생의 온상이었던 폐업한 정부양곡도정 공장의 쓰레기를 치우고 묵은 때를 벗겨놓자 옛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추억의 공간으로 변신했다. 어려웠던 시절 우리나라 쌀 생산의 획기적인 전기가 되었던 통일벼가 나와 도정을 해서 밥을 배불리 먹게 되었던 시간이 머물렀던 곳이며 싸래기조차 아까워 떡을 해먹고 술을 담갔던 기억이 먼지 쌓인 공간 속에서 살아났다.
벼를 도정하던 기계 장치들이 부속만 연결하면 곧 도정이 가능한 상태로 남아 있었다. 너무 빠른 걸음을 재촉하는 동안 방치되었던 수동 기계들이 불러오는 향수 앞에서 추억에 젖는다. 낡고 오래된 것들에는 향수가 있다. 시간이 고스란히 머물러 살아왔던 사람의 역사를 소환하게 만든다. 마당에는 화물차들이 드나들며 장병들의 매끼 식사가 되는 쌀을 논산 훈련소로 실어갔던 시간이 머물러 있다. 철문이 굳게 닫혀 있는 동안 석성 사람들의 역사와 추억에 빗장이 걸려있었다.
손맛이 느껴지는 나무 트러스 공법으로 지어진 건물은 지금은 남아있는 곳이 거의 없다. 나무를 재단해서 톱으로 일일이 자르고 나사와 볼트로 조여서 지붕을 떠받치게 만들었다. 한땀한땀 사람의 손길로 매만지고 다듬어 수제의 흔적이 배어있는 건축 공법은 60년 전에는 가능했다. 모든 유물들의 가치는 기계의 힘을 빌리지 않은 수작업의 솜씨에서 비롯된다. 이계협 석성면 명예 면장은 "손으로 일일이 다듬는 동안 건물에도 혼이 깃드는 것 같다"고 했다.
최근 도시 재생의 물결이 일고 있다. 무조건 철거하고 새로 짓는 것보다 살려내고 보완해서 환경도 살리고 오래된 것의 가치를 돌아보는 것이다. 부여의 석성면 주민들도 새롭고 세련된 것보다 오래된 것에서 뿜어져 나오는 멋을 깨닫게 되었다. 역사를 간직한 유물에서는 작품성과 예술성을 발견한다면 바로 전 세대가 사용하던 흔적에서는 공감대가 형성된다.
강화도에서는 '조양방직'이라는 우리나라 근대 산업의 성장을 이끌었던 방직 공장 건물을 철거하지 않고 재생시켜 전국적인 관광 핫플레이스로 만들었다. 나이 든 사람들은 추억과 향수를 찾아서 젊은 사람들은 부모가 살아온 시간의 궤적을 쫓기 위해 그곳들을 찾는다. 그 시대를 이야기 하고 공감대를 나누는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박물관의 유물보다 세대가 공감하는 향수가 깃든 물건들에서 다른 감정을 느끼는 것은 바로 우리가 사용했던 것이며 매일 봐왔던 것이기 때문이다.
부여에서도 그런 공간을 찾아서 재생의 길을 택한 것은 잘한 일이다. 정부미 영산 공장이 재생의 시간을 지나 기억을 소환하는 공간으로 재탄생할 날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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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부여의 시골 마을에 살고 있습니다. 조근조근하게 낮은 목소리로 재미있는 시골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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