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민은 4.3의 비극을 겪었다. 내가 집권하면 억울하게 공산당으로 몰린 사건에 대해 진상을 밝히고 억울한 사람들의 원한을 풀어주겠다." 1987년 11월 30일, 제13대 평화민주당 대통령 후보 김대중. <사진 = 전시 도록에서>
강소하
김대중과 평민당이 야권분열이라는 비판을 받으면서 창당에 나선 것은 국민여론의 추이에 따라 나름대로 승산이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김대중은 통일민주당으로 연결된 민추협, 민통련, 학생운동세력, 노동운동세력 등 4대 민주화세력 중 민통련과 학생운동, 노동운동 등 3대 세력의 압도적 지지를 받고 있다는 판단이었다.
다음으로 각종 여론조사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다는 것도 작용했다. <중앙일보>의 1987년 9월 22일 일반 여론조사 결과, 김대중 22.7%, 김영삼 6.1%의 비율로 김대중이 압도적 국민여론을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비슷한 시기에 한 권위 있는 연구기관의 국민의식 조사에서도 김대중이 우세해서 차점자와 평균 50대 37이라는 큰 차이를 보이고, 국민의 82%가 자기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당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응답하여, 새로운 정당의 출현을 원하고 있었다.
평민당은 김대중이 정치 생애를 두고 처음으로 창당한 서민과 중산층을 대변하는 정책정당이었다.
한국정당사는 그동안 혁신계를 제외한 여야당이 비슷한 보수성향의 정책을 내걸어 왔었다. 그것이 평민당이 차별성이 있는 정책정당으로 출범하면서 이념ㆍ정책적 변화를 일으켰다. 1950년대 말 죽산 조봉암이 혁신정당 진보당을 창당한 이래 최초의 일이었다.
그러나 평민당은 진보당이 추구했던 사회민주주의 노선과는 방향이 크게 달랐다. 평민당의 정강 정책은 김대중과 각계 인사들이 그동안 감옥과 망명지에서 갈고닦아 온 내용이 중심이 되었다. 평민당의 주요 정책은 다음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