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았지만 정겨움이 느껴지는 무학로교회의 살림채.
경북매일 자료사진
목사와 건축가, 스님과 지역 주민이 함께 만든 공간
몇 년 전. 조원경 목사는 지역 문화 관련 세미나 모임에서 건축가 한 명을 만난다. 교인들이 30년을 사용한 오래되고 낡은 교회에서 예배를 보는 게 안타까웠던 조 목사는 건축가에게 묻는다.
"우리에게 7천만 원이 있습니다. 이걸로 새 교회를 지을 수 있을까요?"
이 질문에 "네. 할 수 있습니다"라고 답한 사람이 건축가 승효상(제5기 국가건축정책위원회 위원장)이다. 건물의 설계와 건축에 대해 잘 알지 못했던 순박한 시골 교회 목사의 작은 희망을 기꺼이 받아들여 무료로 무학로교회를 설계한 승효상은 미술사학자 유홍준의 집 '수졸당'과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을 설계했던 한국의 대표적인 건축가 중 한 명.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무인도에 가서 사는 삶이 아닌 이상 더불어 산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사람들은 저마다 다르지만 어떻게 서로 많은 가치를 공유하고, 나누면서 살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던 승효상은 저서 <빈자의 미학>으로도 유명하다.
빈자의 미학을 "가난한 사람의 미학이 아니라, 가난할 줄 아는 사람의 미학"이라고 정의한 승효상이 그가 설계하는 건축물에 어떤 철학을 담아온 것인지는 어렵지 않게 짐작이 가능하다.
더불어 사는 사람들이 공동체가 지향해야 할 가치를 함께 나누는 공간이 굳이 크고 화려할 필요가 있을까? 무학로교회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말없이 들려주고 있었다.
신축된 무학로교회엔 조 목사와 건축가 승효상의 노력과 땀만 들어간 게 아니다. '작은 시골에 평화로운 마음의 안식처를 만들고 싶다'는 뜻에 동의한 대구의 한 벽돌공장 대표는 10만 장의 벽돌을 선뜻 기부했고, 인근 영천시에 위치한 사찰 은해사도 교회 신축에 300만 원을 보탰다. 하양읍 주민들도 크고 작은 도움을 아끼지 않았다.
무학로교회엔 은해사 주지가 심은 나무 한 그루가 서 있고, 그 아래엔 '아름다운 우리의 인연이 영원히 이어졌으면 한다'는 내용의 표지석이 새겨져 있다. 그걸 보면서 섬기는 신은 달라도 결국 종교의 핵심은 사랑과 자비, 이해와 용서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목사와 건축가의 순수한 우정과 종교 간의 벽을 훌쩍 뛰어넘은 화합, 여기에 이름을 드러내지 않고 자신의 신앙심을 보여준 사람들. 무학로교회는 이 모든 것들을 재료로 만들어진 듯했다.
'공간 물볕'도 하양읍의 새로운 명소로 떠올라
비단 기독교인만이 아니라, 외로움과 번잡함에 지친 현대인들에게 위로를 주는 공간이라는 입소문이 나면서 무학로교회엔 갈수록 많은 사람들이 드나들고 있다.
세상에서 상처받은 이들이 혼자 조용히 찾아와 한참을 예배당에 앉아 있다 가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귀띔. 여기에 더해 승효상의 스타일과 건축 철학을 직접 느껴보고자 하는 학생 여행자들도 방문한다고 했다.
얼마 전엔 무학로교회 맞은편에 카페와 갤러리, 야외 전시장으로 구성된 '공간 물볕'이 또 하나의 하양읍 명물로 들어섰다. 깔끔하게 정돈된 정원과 감각적으로 디자인된 카페, 여기에 작고 예쁜 전시 공간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