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보로 판명난 북한 관련 기사. 위부터 MBN(2020/4/21), 연합뉴스(2015/05/12), 조선일보(2013/8/29)
MBN, 연합뉴스, 조선일보
김정은 사망설, 고위 인사 처형설 등 북한 관련 헛소문은 언론의 단골 오보 레퍼토리입니다. 1986년 조선일보 김일성 피살설 오보, 2013년 현송월 총살설 오보, 2020년 국내 언론이 대거 받아쓴 CNN 김정은 사망설 오보 등에서 볼 수 있듯 북한 관련 보도에서 사실 검증은 '안 해도 그만'이 된 지 오랩니다. 북한의 특수성 탓에 사실 확인이 어렵다는 한계도 있지만, 검증을 할 수 없다면 기사를 쓰지 않거나, 최대한 여러 취재원에게 사실 가능성을 확인해보는 게 저널리즘의 기본 원칙입니다.
그런데 불과 한 달 전에도 언론은 <글로브> 보도를 받아쓰기한 것과 판박이 기사를 냈습니다. 9월 19일 '북한 정권수립 기념일(9·9절) 행사 때 모습을 드러낸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본인이 아니라 대역일 수 있다는 의혹을 도쿄신문이 제기했다'는 내용이 언론에 보도됐습니다. <연합뉴스> '"살 쏙 빠진 김정은 혹시…" 도쿄신문, 대역 의혹 제기'(9월 19일 박세진 기자)에서 시작된 '김정은 대역설' 옮겨쓰기는 <이데일리>, <경향신문>, <디지털타임즈>, TV조선, MBN, <서울신문>, <머니투데이> 등 총 34개 매체에서 반복됐습니다. "전했다", "주장했다", "거론했다"며 외신을 '복붙(복사붙여넣기)' 수준으로 받아썼습니다.
이들 보도를 보면, <도쿄신문>은 '대역설' 근거로 "한국 국방부에서 북한분석관으로 일했던 고영철 다쿠쇼쿠대학 주임연구원의 주장" 하나를 내세웠고, 이러한 주장을 반박하는 북한정치학자 의견도 함께 실었는데요. 기사 안에서도 주장이 엇갈리고 있지만, 제목엔 '대역설'을 앞세웠습니다. 더불어 <도쿄신문>과 이 신문이 언급한 두 학자의 주장을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지 최소한의 검증도 하지 않았습니다.
<한국경제> '[천자 칼럼] 가게무샤(影武者)'(10월 25일 홍영식 대기자)는 사실 여부가 불분명한 9·9절 김정은 대역설을 두고 "분명한 것은 '가게무샤'설이 나오는 자체가 김정은 체제가 불안하다는 증거"라고 주장했습니다. '가게무샤'는 '적을 기만하거나 아군을 장악하기 위해 세우는 대역'을 뜻하는 일본말인데요. 각종 '설'이 난무하는 건 이를 검증조차 하지 않고 받아쓰는 언론의 잘못된 보도태도에 그 원인이 있지 않은지 살펴보는 게 게 먼저 아닐까 싶습니다.
게으른 북한 뉴스 취재, 남북관계 걸림돌 된다
'김정은 대역설'과 관련해 검증 없는 받아쓰기 등이 난무한 가운데 MBN이 이번 사안과 관련해 두 번째로 작성한 '[픽뉴스] 시민 울린 지하철 방송·또 폭행 논란·미래세대 위한 목소리·김정은 대역 의혹?'(9월 19일 박자은 기자)은 최소한의 검증을 시도했습니다.
해당 보도는 통일·북한 문제를 다루는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을 인터뷰해 "일본 신문이 가게무샤(대역) 식 얘기를 너무 많이 하니까" 등의 발언을 전하며 "도쿄신문은 종종 선정적으로 북한 소식을 전하기도 해서, 일각에선 신뢰도가 떨어진다는 말도 있다"고 언급했습니다. 충분하다고 보긴 어렵지만 북한 관련 국내 전문가에게 해당 사안을 질문하고, 도쿄신문 북한뉴스를 어느 정도 신뢰해야 하는지 정보를 제공한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